조용한 다수, 말 없는 책임
민주주의는 참 매력적인 말이다. ‘모두의 뜻으로 세상을 움직인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선생님이 말했다.
“민주주의의 꽃은 다수결이다.”
그 말은 참 그럴듯했다. 다수의 뜻이 존중되고, 누구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라니.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면서, 나는 그 말에 조심스럽게 물음표를 붙이게 되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이게 다수의 의견일까?”
거리에서, 인터넷에서, 방송에서 가장 많이 보이고 가장 크게 떠드는 목소리는 어쩐지 늘 비슷한 편향을 가진다. 실제로 내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고,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 특별히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회는 자꾸만 소란스러울까?
어쩌면, 우리는 ‘요란한 소수’의 세상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말을 크게 하고, 자극적으로 표현하고,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공론장을 지배한다. 그들은 작지만 조직적이고, 확신에 차 있으며, 무엇보다도 목소리를 낼 줄 안다. 반면, 조용한 다수는 말이 없다. 아니, 말을 안 하는 것이다. ‘내가 말해봤자 뭐가 바뀌겠어’, ‘괜히 욕먹기 싫다’, ‘그냥 조용히 살자’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침묵시킨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숫자의 원칙이지만, 그 숫자는 ‘표현된 숫자’일 뿐이다. 소리 내지 않으면, 아무리 많아도 없는 것과 같다. 투표장에 가지 않는 다수, 설문에 응하지 않는 다수, 댓글을 달지 않는 다수는 결국 세상을 바꿀 힘을 잃는다. 조용한 다수는 그렇게 점점 존재감을 잃고, 그 자리를 소란한 소수가 대신 차지한다.
나는 때때로 나 자신에게도 묻는다. "너는 왜 말하지 않니?"
그저 귀찮아서, 혹은 겁이 나서 침묵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는지 불만을 품는다. 말하지 않는 책임, 행동하지 않는 책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참여의 이름으로 완성된다. 투표소에 가는 발걸음 하나, 의견을 표현하는 문장 하나, 그런 것들이 쌓여 사회를 만든다. 다수결은 꽃이지만, 그 꽃이 피려면 햇볕과 물, 즉 수많은 시민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짐한다.
침묵하지 않겠다고.
조용한 다수가 아닌, 책임 있는 다수가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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