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었던 노동운동 

             전태일 재단 문학상 수상
               “3일의 신혼” 장편소설 저자

지 은 이 : 이   호   승 (시니어노조 02 6277 2347)

이 글은 퇴직한 선배들이 경험했던 노동운동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국노총에서 출판한 내용의 일부임.                                                                                                   
                                                                                                          
                                                                                                                      사회생활의 첫걸음 농촌운동으로 시작.  
  
 나는 강원도 원주 근교의 200여 호(지금은 300여 호)가 모여 사는 면소재지에서 태어났다. 마을 앞에는 섬강이 흐르고. 5형제바위를 비롯한 바위들이 산과 함께 솟아 있는 경치 좋은 고장이어서 국립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마을이 빈촌이었지만 유명한 인사를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조선 선조대왕 때, 이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내신 조상을 비롯해 교육감(2). 대한적십자사 총재. 국립대학교 총장. 사립대학교 총장. 육군 장성. 국회의원. 예술가. 대기업 대표이사. 대학교수. 북한의 교육부장관. 김일성대학교수 등 등…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일꾼과 식모가 있었고. 가난한 친척들이 우리 집에 와서 살다시피 하게 한 기억으로 보아 괜찮게 살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6·25전쟁을 겪으면서 본가가 불타고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우리 과수원집에서 주로 살면서 고생하며 자랐다.
 나는 어릴 때 개구쟁이로 컸다. 100m 달리기는 맡아 놓고 1등을 했고. 군대놀이대장. 골목대장 등을 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며 세례를 받고 청년회장 등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신앙이 싹텄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노동운동의 기질이 자란 것 같다. 물론 보잘 것 없는 노조운동이었지만……
  나는 1961년 11월에 육군에서 제대를 했는데 4H클럽 회장. 면새마을 운동 총무를 하면서 농촌운동을 하 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향친구인 이창복(후에 국회의원 됨) 친우와 자주 어울리며 『농촌 살리기 운동』을 하 기로 했다. 그러려면 우선 각 마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꾼을 길러야 된다는 합의 하에 2박3일의 세미나를 하자고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함석헌 선생님을 강사로 모시기로 했다. 당시에는 5·16군사정권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때라 분위기가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함석헌 선생님은  “총칼로 정권을 빼앗은 자는 총칼로 망하리라”는 제하의 글을 모일간지에 연재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기사였고. 젊은이의 피를 끓게 하는 내용이었다. 누가 서릿발 같은 군사독재정권에 감히 맞설 수 있는가? 그러나 함석헌 선생님은 날카로운 붓을 세워 독재정권과 맞서고 있었다. 이에 매료되어 우리는 선생님을 강사로 모시기로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원주방송국을 통해 보도 되자 난리가 났다. 원성군.(원주시와 합병 전) 지서, 면장에게 불려 다니며
“왜, 무정부주의자를 강사로 초청하는가? 당장 취소하라”는 압력이 연일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창복 친우가 상경하여 함석헌 선생님을 모셔왔다. 기차에서 내리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한마디로 선비였다. 한복에 두루마기 그리고 흰 수염의 모습은 존경스럽기만 했다.
“저런 자태에서 어떻게 그 무서운 글이 나오는가?” 나는 무척 의아했다.
한참 후, 강의가 2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수강생뿐만 아니라 방송을 듣고 찾아온 어른들도 함께 수강했다. 강의가 끝나고 상경하시겠다는 선생님을 간곡히 부탁하여 우리와 함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방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명상하듯 아무런 말씀이 없었고, 특히 하루에 한 끼만 식사를 하시기에 내가 여쭈어 보았다.
“선생님. 왜 하루에 한 끼만 식사를 하십니까?” 그러자
“누구는 먹을 것이 없어 다섯 식구가 집단자살을 했는데. 내 어찌 한 핏줄을 타고난 동포로서 하루 세끼 밥을 먹겠나? 내가 그 영혼을 위로하는 것은 나도 배가 고파 보는 걸세”
사연인 즉, 그때 서울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5인 가족이 방에 연탄불을 피워 놓고 집단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 가족을 생각하면서 금식을 하다시피 하셨다.
 나는 후에 노조 지부장(현 위원장)으로 있을 때. 서울 원효로에 사시는 선생님을 몇 번 찾아뵙고 귀중한 말씀을 듣곤 했는데. 그 중에서 아직도 내 머리에 남아있는 말씀이 있다.
“학생운동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그것은 그 운동을 이끄는 간부나 학생들이 사명감을 갖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신념이 있었고. 행동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네들이 노력한 만큼 민주주의는 발전되지 못했다. 그것이 안타깝다.
 지금 우리나라에 노동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물론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겠지… 그러나 내가 보기에 과연 노동자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노조가 가고 있는지~ 매우 의아스럽다. 노조간부들이 정권자와 기업주 앞에 가기만 하면 약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노동운동이 부여한 사명을 잊지 말고 가시밭길을 가라. 탄압을 두려워하지 말라. 희생을 각오하라. 배고파 고통 받는 노동자와 그 가족을 잊지 말라. 그리고 정의를 위해 싸워라. 그러면 지금보다는 나은 사회가 될 것이다”

노조운동에 발을 내딛고 임시직 해고를 파업으로 막다

 농촌운동을 몇 년간 하다보니까 한계를 느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농촌운동에 매진하지 않으면 도저히 발전할 수가 없음을 간파했다. 그래서 농촌운동을 포기하고 취직을 하 기로 했다. 마침 철도청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시험이 있어서 응시했는데. 시험공부도 아니하고 시험을 보았으니 불합격은 당연할 수밖에…
 허전한 마음으로 서울 삼각지를 가고 있는데 (주)00 용산공장에서 종업원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나는 관련서류를 준비해서 회사에 제출했다. 서류를 검토한 담당자가 일주일 후에 오라고 한다. 일주일 후에 갔더니 1965년 4월 27일부터 출근을 하라고 한다. 당시 몇 명이 입사했는지는 몰라도 동기 중에는 경찰경감 출신, 목사 사위(2년 후 처제를 나에게 소개함), 성균관대학교 3년 중퇴자, 사장 6촌 동생 등 그야말로 괜찮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는 계속 친하게 지냈다.
근무시간은 1일 12시간 맞교대 작업이었고. 월 5,000여원으로 기억되는 저임금이었다. 생산품은 각종 슬레이트를 생산하는 작업이어서 힘든 공정이 많았다. 그때는 대부분의 공장들이 자동화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약 400여 명의 종업원 중에서 정식발령을 받은 종업원은 150여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임시공이었다. 임시공 중에서 괜찮다고 평가되는 종업원들은 입사 후 3개월이 지나면 정식종업원으로 발령하였는데. 나는 동기 5명과 함께 정식 종업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상의 끝에 모두 노조에 가입을 했다. 정식발령을 받자. 관리과에서 나를 검사원으로 일하라고 한다. 검사원은 원료입고부터 제품출하까지를 여러 명이 나뉘어 업무를 담당하는데. 나는 1일 완성품집계, 불량품집계를 담당했다.
 나는 노조에 가입한 후, 지부장에게 건의를 몇 번했다. “지금 조합원들이 불만이 많은데 노조가 제 구실을 하라고…” 그러나 지부장은 걱정할 것 없다고 하면서 내 말을 무시했다.
 입사한지 2년이 지난 1967년 8월에 지부장선출의 총회공고가 붙었다. 그러자 입사 동기들이 나를 밖에서 보자고 하더니 지부장에 입후보 하라고 한다. 나는 사양하면서 고참 중에서 적임자를 물색해 보라고 했다. 대회 날 회의장으로 갔더니 40여명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부장에 입후보 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지부장으로 선출을 한 것이다. 나는 이를 고사하고 현장으로 갔다가 30여분 후, 회의가 궁금해서 다시 회의장으로 갔더니 나를 또다시 지부장에 선출해 놓았다. 나는 재차 거절할 수 없어서 지부장 직을 수락했다. 노조를 인수해 보니까. 조합원은 58명에 불과했고. 정식종업원 100여명도 노조를 외면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서울공고 출신인 조합원 김00가 소책자인 “미국노동운동사”를 나에게 주면서
“앞으로 노동운동을 하려면 어려움이 많을 텐데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한다. 나는 노동운동에 대한 책을 처음 보는 것이어서 감사하게 받아 읽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투쟁의 역사를 읽으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그 책을 수차례 읽었다. 특히 1886년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이 1일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가두로 몰려나와 경찰이 쏘아대는 총탄에 맞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지만, 그리고 누가 설치했는지 알 수없는 폭탄이 터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사선을 넘으며 투쟁한 역사를 접하면서 나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사건이 발생한 다음해에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 노동자대회에서 미국의 노동자들이 주장한 1일 8시간 노동제를 적극 지지함과 동시에 그날을 노동자의 날로 정하자는 결의에 의거 노동절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노동운동 사를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노조운동을 해 보겠다고 결심을 했다. 현실이 나를 넘어뜨린다 해도 다시 일어나 조합원의 권익향상을 위해 나를 바치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비참한 삶! 인권을 무시하는 노동현장! 하루 12시간의 노동으로 건강마저 앗아가고 있는 현실! 이 모든 것이 이제 내가 해결해야 할 사명임을 절감했다.
 우선 조직을 확대강화해서 힘을 길러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처음 열린 상무집행위원회(이하 상집회) 회의에서 입사 3개월 이상, 주임까지 무조건 노조에 가입시킬 것을 결의했다. 반 강제를 동원해서라도 자기 부서의 미가입자는 기필코 가입원서를 받자고 결의했다. 그리고 임시공에게 있을 수 있는 불이익은 노조에서 책임지기로 했다. 그 운동은 주효해서 2~3개월 만에 300여명의 조합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후에 기업 확장으로 1,500여명 증가). 그러자 회사가 긴장했는지 하루는 공장장이 나를 보자고 하더니,
“미 발령자까지 노조에 가입시키면 해고 시, 노조가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느냐?” 하면서 당장 가입원서를 돌려주라고 한다. 나는 근로기준법에 입사 3개월(사무직은 6개월)이 경과되면 자동적으로 정식 종업원이 되기 때문에 그들을 노조에 가입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맞섰다. 그러자 공장장이 “나중에 후회할 짓은 아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했다.
 슬레이트는 겨울철이 비수기이다. 그래서 3~4월에 채용하여 일을 시키다가 12월이 되면 임시공은 모두 해고를 하였는데. 그들은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실업자가 득실거렸다. 특히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농민들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도시로 몰려드는 바람에 일자리가 부족했던 것이다. 때문에 임시직이고 뭐고 일할 수만 있으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다음해 3~4월에 다시 채용한다는 조건이어서 해고를 저항 없이 받아드리고 있었다.
 그 해도 어김없이 11월 30일에 정식발령자 150여명을 제외하고 미발령 종업원을 해고하는 공고가 게시되었다. 해고 공고가 붙자. 이전과는 달리 미발령 조합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야 ~ 이게 뭐야? 해고라고?”
“노조는 뭐하는 거야? 지부장은 어딨어?”
“해고 좋아하네. 어림도 없지.”
“그동안 실컨 부려먹고 잘한다.” 등등 제각각 흥분하며 교대시간인 20:00시를 기해 기계를 세웠다.
이에 내가 “모두 2층으로 갑시다!”라고 소리치자 모두 2층 회의실에 모여 해고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얼마 후 공장장이 나를 보자고 하더니
“이 사건은 노조가 선동했으니 지부장이 책임지고 해산시키라”고 한다. 나는 “원인제공은 회사 측에서 했으니까. 사건의 책임은 회사에 있다”고 맞섰다.
“그러면 우선 농성을 풀고 정상작업을 하면서 이 문제를 논의해 보자”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해고를 철회하지 않는 한, 농성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먼저 해고를 무효화하라”고 했다. 이어 농성장에 가서 공장장과 한 얘기를 전하면서 나는 외쳤다.
“3월부터 11월까지 저임금을 주면서 부려먹고 비수기라 해서 추운 겨울에 우리 보고 나가라고 하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회사는 엄청난 이익을 챙겨 지방에 공장이 늘어나고 있는데 저축한 돈 한 푼 없는 우리 보고 나가라고 하니 회사는 양심도 없는가? 이참에 회사의 못된 버릇을 우리의 단결력으로 깨 부셔버리자!”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자 “옳소. 옳소”하면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23:00시경이 되자 공장장이 나를 다시 보자고 하 기에 공장장실에 갔더니.
“해고를 철회하기로 사장님과 합의가 되었으니까 그만 해산하라”고 한다. 나는 “공고문을 게시해야 조합원들이 믿고 해산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공장장이 서무과장을 불러 해고를 취하한다는 내용의 공고를 하라고 지시한다. 나는 농성장으로 와서 노사 간 합의한 내용을 설명하고 공고가 붙으면 해산하자고 했다. 잠시 후, 해고철회의 공고가 붙자. 모두 환호하며 만세삼창을 끝으로 해산했다. 그 후 노조가입을 꺼리던 비조합원들도 전원 가입함과 동시에 노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 단체협약 체결

 나는 지부장이 되면서 먼저 상급노조인 전국화학노조를 찾아갔다. 그리고 단체협약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어 단체교섭의 요령, 노사관계, 조직관리 등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단체협약(안)을 가져다가 본부노조의 지도를 받아가면서 57개항에 달하는 사항을 회사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 측도 잘 모르는 내용이어서 3개월 동안 입씨름만 계속했다. 그 후 진전이 되면서 5개월 만에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노조전임제, 퇴직금누진제, 호봉제, 상여금지급 명시 등 주요 사항들은 합의를 보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노조사무실을 본사로 옮겨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장장과 아무리 교섭해 봤자. 중요한 내용은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 년 후 본사로 노조 사무실을 옮겨, 사장, 중역들과 직접 교섭하니까 중요한 사안들이 신속하게 타결됨)
 그런데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농촌 지붕개량사업이 시작되면서 슬레이트가 불티나게 팔렸다. 그래서 지방에 공장이 늘어났고. 반장, 주임, 계장 등이 승진과 동시에 지방으로 발령되는 바람에 나도 반장을 거쳐 고속으로 검사주임이 되었다. 주임이 되자 한가한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노조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하루는 공장장이 나를 보자고 해서 갔더니
“소문에 의하면 이주임이 노조사무실에만 있다고 하는데 사실이요?”라고 묻는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주임을 하든지 노조전임을 하든지 한쪽을 택일하라”고 한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노조전임을 택했다. 그러자 공장장이 다음 달부터 전임을 하라고 한다. (그 후 노조가 결성되는 사업장에 각각 2명씩 전임자 배치)
 나는 전임을 하면서 노동교육이 있으면 찾아가서 수강했다. 교육을 많이 받아야 지식이 쌓이고. 노동운동에 대한 이념과 철학이 설 것 같아서였다. 또한 노동관련 책자를 구입하여 노동운동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했다.
 그러나 전임 후 첫 임금을 수령하고 깜작 놀랐다. 기본급만 지급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네가 견디나 어디 두고 보자”란 듯이……
그러나 나는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회사 측에 내 문제를 따지거나 사정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외식을 금하고 점심도시락을 싸가지고 출근하면서 이틀에 나누어 먹었다. 당시 30세의 나이에 도시락을 반만 먹고 뚜껑을 덮기란 참으로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결심한 바 있어 수 주일을 그렇게 했다. 당연히 빈 도시락은 그 다음날 가지고 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가 울고불고하며 임신 6개월이 된 몸으로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얼마 후 이 사실을 상집간부들이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 모르게 회사와 협의하여 내 임금을 과장급 수준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사양하고 계장급 임금을 받아들였다.
 나는 1968년 12월 15일 서울 남산 입구에 있는 초라한 여성회관에서 검소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나의 은사이신 원주 대성 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신 장일순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교육자였지만 당시 원주 천주교 지학순 주교님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신 인품이 훌륭한 분이셨다. 사회는 친구 이창복이가 맡아 주었다. 그런데
「알려드립니다. 이호승이가 결혼을 합니다.」 라는 ‘알림장’을 50명에게만 보냈는데. 일가친척과 조합원들이 대거 참석하여 결혼식장이 복잡했었다.
나는 평소 입던 허술한 양복을 그대로 입고. 신부는 한복을 입었다. 나는 신부에게 저금통을, 신부는 나에게 십자가를 예물로 주고받았다. 십자가는 희생정신을, 저금통은 알뜰히 저축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내가 이렇게 검소한 결혼식을 한 이유는, 돈도 없었지만. 돈 안 드는 결혼식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성균관대학 출신의 입사동기 조합원이 빚을 내어 워커힐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 빚을 갚느라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후 회사강당에서 조합원들이 조촐한 결혼식을 해서 마음이 흐뭇했다.

전태일 분신과 금연금주 운동

전태일 영정을 안고  오열하는 이소선 여사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전태일이 분신자살했다는 신문기사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생명을 바친 그의 고귀한 희생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며칠 후 상집간부들과 함께 전태일 동지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갔더니. 노총을 비롯한 각 산별노조에서 보낸 17개의 조화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저게 아닌데? 전태일이가 바라는 것은 조화가 아닐 텐데?”
나는 못마땅해 하면서 유가족을 만나려고 하였지만 경찰의 저지로 만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병원입구에서 상집간부들과 한참을 서 있는데 한 청년이 나오더니, “내일 장례추도식을 창동교회에서 하니까 참석하실 분은 내일 09:00시까지 이곳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라”고 한다. 이튿날 나는 성모병원에 가서 버스를 타고 추도식 장소로 갔다.
 추도식이 시작되자. 나는 죄인이 되어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추도식 장면도 나를 슬프게 했지만 그동안 안일하게 노조운동을 해온 양심의 가책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과연 생명을 건 노동운동을 생각해 보았는가? 아니, 막중한 사명을 무겁게 받아들여 단 한번이라도 최선을 다해 보았는가?”
 전태일 모친이신 이소선 여사는 정신이 정상이 아닌 듯 했다. 이여사는 기도를 통해 비통해하면서
“우리 아들은 이제 영원히 죽었다. 아니다. 우리 태일이는 하나님 곁으로 갔으니까 영원히 살았다.”
하면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절규하는 모습에 많은 조문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특히 내 앞에는 15~20세 정도 되어 보이는 100여 명의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이 앉아 있었는데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 야윈 얼굴이. 마치 폐병환자와도 같은 모습이어서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들은 슬피 울면서
“우리 오빠를 누가 죽였어! 우리 때문에 고생 많이 했는데…”
“바보같이 왜 죽어~”
“고생스러워도 살지~ 왜 죽어” 하면서 흐느낄 때, 나는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그래! 내가 죽였다. 내가 노조운동을 잘못해서 태일이가 죽었다” 하면서 그들을 따라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참아 보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내 의지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 후 나는 고 전태일 동지의 어머님인 이소선 여사를 수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노조 대의원대회 때 초청하기도 했다. 하루는 다방에서 만나 대화하던 중에
“요새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물었더니
“그동안 미국에서 들어오는 헌옷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요새는 그것도 안 팔려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책을 팔아 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책을 팔다니?”
“노동운동 관련 책자를 가지고 노조를 방문해서 협조를 구하면 많은 노조가 책을 팔아줄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안색이 변하면서
“내 걱정일랑 하지 말고 당신네들이나 잘하시오. 몇 권이나 팔아주겠어. 노조가 노조다워야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천장만 처다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전태일 동지가 운명할 때 무슨 말을 남겼느냐?”고 물었더니
“하나님은 자살한 자를 버린다고 하지만 나는 자살한 것이 아니고 이 나라 노동자를 위해서 분신한 것이니 하나님도 나를 기꺼이 맞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내 죽음에 대해 서러워하지 마시고 내가 못다 한 일을 어머니가 대신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아~ 배고프다”라는 뼈저린 마지막 말을 남기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상집 및 대의원 연석회의를 열고. 고 전태일 동지의 분신자살 동기와 추도식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친 동지의 고귀한 뜻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 대의원이
“일주일간 금연 금주운동을 하자”고 제안한다. 또 어떤 대의원은 금연 금주운동이 끝난 즉시
“모금운동을 해서 유가족을 다소라도 돕자”고 한다.
그리고 금연 금주를 위반한 조합원은 “제명조치”하자고 한다. 이 모든 안건이 반대 없이 전원찬성으로 결의되었다.
이튿날 조합원에게 알리는 대자보를 붙였다. 「전태일이가 살아있을 때의 활동, 그는 왜 주검을 택해야만 했나? 우리는 그의 영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결의내용을 알렸다. 그러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어쩌자고 그런 대자보를 붙이느냐는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한 내용의 게시는 금기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공장장에게 당위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여 오랫동안 게시할 수 있었다.
공고가 나가자 현장 분위기는 숙연했다. 술집 출입은 일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조합원은 가끔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 징계를 하겠는가?. 이름만 적어놓고 모르는 척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모금운동을 전개했는데 생각보다 적게 걷혔다. 모금된 돈을 동아일보에 기탁했더니 기사를 내주어 기분이 좋았다. 일주일 후 동아일보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같이 이소선 여사를 만나러 가자고 한다. 나는 기자와 함께 이 여사를 뵙고 성금을 전달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동생(남동생은 전태삼 씨이며. 여동생은 현재 국회의원인 전순옥 씨임)에게도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너의 형이 왜? 주검을 택했는지 너희들은 커서도 잊지 말아야 된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좌절하지 말고 꿋꿋하게 살라”고 당부했다.
 그동안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 동지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유독 전태일 동지를 크게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생전, 그의 삶이 너무나도 비참했고. 그의 노동운동이 너무나도 외롭고 처절한 몸부림이었기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최초의 분신이었기에…
 금연금주가 끝난 후 추도식을 하려고 준비했으나 누가 제보했는지 전날 경찰서로 연행되는 바람에 추도식은 실패했다. 나는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동아일보에 조위금을 기탁한 것은 그것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유족을 돕자는 뜻이었는데 그 많은 노조가 외면했다. 당시 대학생들과 교회에서는 여기저기서 추도식을 했고. 심지어 숙명여자대학교 학생들은 ‘근조’의 검은 리본을 달고 등교를 하 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의 노조들은 침묵했다.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기업주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노조가 없는 사업장 문제도 관여해야 하느냐? 는 생각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여기 서울대학생회 추도사를 소개한다. 무릇 노조운동에 발을 내딛은 사람이라면 한번 읽으면서 현실에 찌든 마음을 정화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 아! 전태일 선생!
스물셋의 젊음을 송두리째 아낌없이 불태운 당신! 가난한 집안에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정에의 책임이 중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귀는 항상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이웃의 고통을 자신의 가난이나 고통보다 더욱 아파하였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날을 가난으로 못간 학창에서의 배움을 갈망했습니까? 가난 때문에 당신의 가족은 뿔뿔이 헤어졌었고 길가에서 다시 만나기 그 몇이었습니까? 수제비와 풀빵으로 연명하고 그나마 그것마저 못 먹고 굶주린 날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당신의 투지와 당신의 초인적인 행적을 기리고. 아무도 감히 도전하지 못한, 이 무서운 악마들에게 항거한 당신의 불사른 육탄을 통곡하고 애도하자는 것입니다. 그때 당신이 가난을 되씹고 청옥고등공민학교에서 쫓겨나오면서도 그때 당신이 동생 홍태와 함께 수제비와 풀빵으로 주린 배를 때우고. 구두닦이. 신문배달을 하면서도 그때 당신이 아버지를 따라 청계천 연변 피복제조 직공으로 전전하면서도. 당신은 항상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며. 저 깊이 타오르는 불길을 지피고 있었습니다.
평화시장 재단사로 취직되던 그날. 새벽길! 기쁨과 희망에 목메어 손 흔들며 어머니에게 당신은 미소로 소녀처럼 버스에 뛰어 올랐습니다. 당신의 눈에 맺힌 이슬은 유난히 밝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커다란 꿈의 설계로 변화하였습니다. 
그러나 꿈에 부풀어 티 없이 맑기만 하던 당신의 창에는 갈퀴로 돈을 긁어모으고자. 어린 소녀들과 불쌍한 소년들의 뼈와 살을 깎아내는 병든 기업주가 비춰졌으며. 당신은 그곳 청계천 연변의 가축우리에서 학대받는 동료들의 기계소리 같은 신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낮은 천장 밑에 엎드려. 어두운 불빛아래서 먼지를 마시며 하루 열여섯 시간동안 휴일도 제대로 없이 도시락을 먹는 둥 마는 둥. 기계처럼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배를 곯아야 하는. 이 차디찬 얼음 속에서 이만 칠천 노동자들은 피를 토하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삼십리 길을 걸어 다녔고. 절약된 차비 삼십 원으로 일 원짜리 풀빵 삼십 개를 사서 배고픈 당신의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당신은 월급을 털어 노동조건에 대한 실태조사를 행하였고. 근로기준법을 연구하였습니다.
 당신은 기업주에게 항의하였으나. 기업주는 당신을 내 쫓았습니다. 당신은 노동청에 진정하였으나 노동청은 진정서를 묵살하였습니다. 당신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절규하였으나 근로기준법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은 항의농성을 하였으나. 경찰은 농성을 해산시켰습니다. 끝내 당신은 스스로 육신을 태우고 근로기준법을 불살랐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얼음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이었습니다.
 아 아! 당신은 학대받고 착취당하고. 피를 빨리는 이만 칠천 종업원의 앞장을 서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첫 봉화를 들어 청계천 연변에 힘차게 횃불을 밝힌 당신은 지금의 자리에 육신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우렁찬 웅변으로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적시고 우리의 용기를 일깨우며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의 신장을 위해서는 불의와 부패에 스스로 감염되어 자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분연히 궐기하여 항거해야한다는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당신의 불꽃은 지금 활활 타오르고 있으며, 당신이 든 횃불은 우리가 받아 들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주들이어!
당신들은 이만 칠천 종업원의 신음과 절규를 듣는가? 아니 이만 칠천의 불꽃을 보는가? 당신들은 이만 칠천종업원의 피맺힌 음성도, 타오르는 불꽃도 의식할 수 없는 황금의 노예가 아닌가? 전태일 선생의 죽음도, 제2의 전태일의 출현도 당신들의 배고픔이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게 할 수 없단 말인가? 당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더 이상 그들의 아픔이 그들의 희생이, 그들의 질병이,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저주받을 무리들아!
노동조합 지도자들이어!
 지금 이 시간에도 이만 칠천 노동자들이, 아니 일백만 노동자들이 암울한 노동조건하에서 살을 깎는 괴로운 노동을 하고 있다. 그대들의 노동복 속에 피묻지 않은 하얀 셔츠는 무엇을 말하며, 조합강령을 높이 들고 있는 그대들의 위선적인 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청계천 연변 이만 칠천 노동자를 위하여 한국노총과 16개 산별노조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대들은 일백만 노동자들의 노고 위에 군림하는 노동귀족은 아닌가? 그대들은 지금 조직에서 소외되었거나,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제2의 평화시장과 제3의 평화시장을 찾아가라.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싸워라. 이것이 전태일 선생의 혼을 위로하고 긍지를 계승하는 참된 길임을 자각하는가?
 아 아 통탄한다.
근대화의 경제성장에 혹하여 국가의 자주성을 해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익을 침해하면서, 일백만 노동자의 피땀어린 생산 노력을 경시하고, 농민의 과다한 희생을 강요하면서 소수 특권층에 부의 편재를 가져오는 오늘날의 경제정책을……
아 아! 저주한다.
개발을 위하여, 성장을 위하여, 민주도 복지도 생명도 인간도 그 어떠한 가치도 기꺼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오늘의 위정 자세를.
 학생들이여!
 우리는 항상 민족 이익을 신장하고 민주주의를 창달하는 첨병으로 자부하여 왔고, 또 이것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항쟁하여 왔다. 우리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을 담당하여 왔다. 그러나 전태일 선생의 죽음은 우리에게 숙연한 반성의 눈물을 삼키게 하고 있지 않는가.
‘나에게는 왜? 대학생 친구가 하나도 없는가? 이럴 때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으면 얼마나 힘이 될까!’ 이렇게 한탄하며 근로기준법을 연구하였던 전태일 선생! 아 아~ 부끄럽고 죄송스럽구나. 이 영웅적인 투사의 죽음을 방관한 우리는 죽고 싶구나! 우리는 선생 앞에 고개를 들 수 없구나. 그러나 선생은 우리를 용서하시리라. 우리가 선생의 뒤를 따라 죽음으로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노동자의 권익옹호를 위하여 투쟁하는 한!
 종교인 여러분, 지식인 여러분, 정치인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껏 무엇을 하셨던가요? 여러분은 지금 이 숙연한 선생의 죽음 앞에 할 일을 잊었군요. 얼음을 뚫고 나온 이 폭발적인 불꽃 앞에 붓을 꺾었군요. 당신들은 지금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자신을 질책하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군요. 당신들의 눈물로 저 불꽃이 꺼지겠다. 낙관하지는 마십시오. 저 불꽃은 당신들의 눈물로는 끌 수 없는 열렬한 불꽃입니다. 당신들의 떨리는 손이 저 횃불을 이어 받는 날, 그리고 높이 손에 들고 청계천 연변을 밝혀주는 날 비로소 꺼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만 칠천 평화시장 노동자 여러분! 그리고 일백만 노동자 여러분!
 전태일 선생이 안 계신 여러분은 신명이 안납니다. 선생이 안계신 여러분은 힘이 없습니다. ‘나 하나의 죽음이 이만 칠천 동료들을 살리는 길이라“ 되뇌시던 선생! 그러나 선생은 죽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여러분의 핏줄 속에 맥박치고 있는 까닭에 여러분은 외롭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잘 살게 되지 않는 한 선생의 영혼은 잠들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이 싸우는 한 선생은 항상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전태일 선생이시여!
당신은 지금 우리에게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슬프지 않습니다. 우리는 울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뒤를 따를 뿐입니다.
선생이시여!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열여섯 시간 노동을 줄여 달라! 어린 소녀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 달라! 어머니도 나를 따라 자결을 할 각오를 하시오. 이렇게 피 끓게 외치며 떠나신 당신, 끝내 뜻을 못다 이룬 당신, 괴로운 평화시장에서 꺾이면 일어나고, 쫓겨나면 또 일어나 싸운 당신, 청계천 연변에 첫 봉화를 올린 당신, 얼음 속에서 불꽃을 일으킨 당신, 이제 당신의 육신은 고요히 잠들어 있으나 당신은 잠들지 말라, 결코 잠들지 말라.
불꽃이여! 활활 타올라라. 꺼지지 말고 훨훨 타올라라. 전태일 선생이시여! 헛되지 않도다. 외롭지 않도다. 잠들지 말고 우리의 곁에 항상 우리와 같이 하소서.
                                                  1970년 11월 20일
                                          서울시내 각 대학 학생회 일동
 
그 후 내가 한국노총에 있을 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일대기를 영화로 제작한다는 기사를 보고 나도 일조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없는 돈을 톡톡 털어 10만원을 기부했었다.

임금인상과 선물. 그리고 몇 가지 이야기

 70년대 당시에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1971. 12. 27)에 의해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유보되어 노조활동이 힘겨웠다.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없는 단결권(노조조직)은 존재가치가 무의미한 것이다. 노동3권은 유기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각기 그 기능을 발휘해야 노조의 존재가치가 있는데. 노동2권이 유보된 상태 하에서의 노조운동은 기능을 발휘 하 기가 어려웠다. 그로 인해 노조가 제 구실을 못하고 저임금에 시달려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가슴에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다. ‘선 성장, 후 분배’ 의 기만적 정책은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지속적으로 강요하였고. 그로인해 노동자들은 겨우 밥만 먹는 비참한 생활을 면하기 어려웠다.
 나는 이를 탈피하고자 무척 힘들게 활동한 것 같다. 노조의 주체성과 자주성은 노조의 생명임을 인지하였기에 절대 빼앗기지 않았으며, 임금인상 때는 본부노조의 임금인상 지침을 참고하여 조합원에게 설문지를 배부하고. ‘주거실태’ ‘생활비 지출’ ‘부양가족 수’ ‘시장물가조사’ ‘회사이익금’등을 조사하여 이를 근거로 조합원 평균가족 수의 생계비를 요구했었다. 즉 현 조합원의 평균임금에서 70%가 인상되어야 생계비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금액을 요구했다. 그래야 종업원들의 생활고를 기업주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부장 13년 재임 기간 동안 22%~29%의 임금인상을 했었다. 1972년도 8시간노동제 도입 시에는 기본급을 70% 인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조합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금년도 임금인상분을 빼면 별거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임금인상 때, 조합원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어떤 부서는 양복을, 어떤 부서는 구두를, 어떤 부서는 금반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부서는 술집으로 초대하여 푸짐한 대접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선물을 무겁게 받아 드렸다. 이것은 성과에 대한 선물이라기보다 앞으로 한눈팔지 말고 조합원을 위해 더 매진하라는 뜻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합원을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을 하 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조합원들에게서 선물을 받았기에 말이다. 나는, 나를 신뢰해 주고 격려해 주는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신바람이 나서 일요일에도. 야간에도 노조사무실을 지키며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지부장 선거 때 나타나기도 했다.
나는 5선을 하였는데. 3년마다 치르는 선거에서 대의원대회 때는 100%의 지지를 받을 때도 있었고. 전체 조합원 투표 시에는 89%를 얻기도 했다. 대결 자가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기존 근로조건은 어떠한 경우라도 지켰다. 이런 사건이 있었다.
70년대 초로 기억되는바, 그 당시 일급 자는 공휴일 특근 시, 50%의 특근수당을 추가 지급하였지만. 월급 자는 특근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지급해 줄 것을 촉구하였지만. 회사는 월급에 수당이 포함되어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 했다. 그로 인해 노사 간 감정이 좋지 않았다. 마침 공휴일인 10월 3일 정상작업을 한다는 게시가 붙었다. 나는 이를 묵과할 수 없어 즉각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월급 자. 일급 자 가리지 말고 모두 출근거부를 결의했다. 그리고 출근하는 조합원은 징계하기로 결의했다.
조를 짜서 정문과 후문에 간부와 대의원을 10명씩 배치하고 사업장 순찰 조, 그리고 버스정류장에도 인원을 배치하여 출근하는 조합원은 되돌려 보내기로 했다. 다행히 한사람도 출근하지 않았다. 기계는 멈추고 현장은 긴장이 감돌았다. 그런데 순찰 조를 책임지고 있던 부지부장이 말하기를. 언제 어떻게 들어 왔는지 보일러 주임이 출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곧 해명하러 올 것이라 했다. 얼마 후 그가 왔기에
“왜 출근을 했느냐?”고 내가 물었더니
“보일러 주임은 단체협약에 의거 파업 시에도 출근하게 되어있어 출근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노려보면서
“이 사람아, 내가 그걸 모를 줄 알고 나에게 그따위 변명을 하는 거야? 이것은 파업이 아니고 출근거부야, 알았어?”
그러자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기만 했다. 나는 그에게
“좌우간에 노조의 결의사항을 어겼으니까. 징계를 받든지 아니면 사표를 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그러자 이튿날 사표를 가지고 왔다. 나는 차마 사표수리를 할 수 없어서 상집간부들에게 그냥 덮어 주자고 했더니 모두 사표를 수리하라고 한다. 이유가, 그는 평소 노조에 대해 비협조적일 뿐만 아니라 술만 먹으면 아무에게나 행패를 부린다고 했다. 나는 고심 끝에 사표를 회사 측에 넘겨주었다. 그래서 지부장 13년 동안 한사람의 조합원을 희생시킨 오점을 남겼다. 기계는 그 이튿날도 멈추어 있었고 격론 끝에 내년도 1월부터 월급자도 특근수당을 지급하기로 합의하고 그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회사 측은 나에게 압력과 회유를 끊임없이 전개하여 과장승진. 대리점운영. 제품수송사업. 그리고 몇 번의 금품수수 등을 제시했는가 하면, 지부장교체를 위해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기도 했다.
 조합원 중에 김ㅇㅇ가 있었는데. 그가 자주 노조사무실에 들려 나를 위로하고 일을 도우며 노조에 열심히 참여를 했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그를 노조간부로 키우려고 기회를 엿 보다가 상집간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지부장으로 발탁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입사동기인 사장 6촌 동생이 나를 보자고 하더니 뜻밖의 말을 전한다.
실은 새로 선출된 부지부장이 노조를 장악하려고 공장장이 은밀히 입사시킨 자라는 것이다. 요즘 그가 공장장에게서 돈을 받아 상집간부와 대의원에게 술대접을 하면서 지부장을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고 물었더니. 하루는 공장장이 보자고 하 기에 갔더니
“자네는 사장님과 친척이 되니까 믿고 얘기한다면서 지금 부지부장이 지부장을 몰아내기 위해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자네도 차제에 부지부장과 합세하여 지부장을 바꾸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장의 친척이지만 나와의 의리를 배신할 수 없어 비밀을 제공한다고 했다.
나는 이튿날부터 술대접을 받았다는 상집간부와 대의원을 불러 사실여부를 확인하였더니 사실로 드러났다. 며칠 후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이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대의원과 상집간부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별말이 없었고, 그러나 부지부장과 몇몇 대의원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이튿날 출근을 하니까. 공장장이 나를 보자고 하더니
“어제 왜 노조 간부들이 싸웠느냐?”고 한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공장장이. 이는 회사 명예를 실추시킨 사건이라면서 징계조치를 하겠다고 한다. 나는 싸웠다는 부지부장과 쟁의부장, 조사통계부장을 불렀다. 그러나 부지부장은 결근을 했고 쟁의부장과 조사통계부장이 왔다.
“왜 싸웠느냐?”고 물었더니
어제 대의원회의가 끝나고 부지부장을 데리고 술집으로 가서
“그동안 술대접 잘 받았다. 오늘은 우리가 술대접을 한다.”고 하자 부지부장이 좋아하면서 술을 몇 잔 마시더니 또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격분한 그들이
“이 자식아~ 우리 노조가 어떻게 컸는데 니가 공장장과 짜고 어용노조를 만들려고 해?”
하면서 밖으로 끌고 나와 심하게 구타를 했다는 것이다. 일주일 후 부지부장이 회사에 왔는데 그때까지 눈언저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창피해서 회사를 못 다니겠다. 고 하면서 사표를 제출했다.
 그런데 며칠 후 더 큰 사건이 터졌다. 하루는 내가 노조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김ㅇㅇ 대의원이 공장장을 데리고 노조사무실로 온 것이다. 내가 의아해서 그들을 번갈아 가면서 보고 있는데. 그 대의원이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받아 이마에서 피를 흘리더니 순식간에 공장장을 받아 공장장이 맥없이 쓰러진다. 그러면서
“까불면 죽는 수가 있어. 함부로 나대지 마” 하면서 쓰러져 있는 공장장을 노려본다. 나는 공장장을 부축해서 밖으로 내보낸 뒤 대의원을 향해
“이게 뭣 하는 짓이야? 왜들 이래?” 하면서 대의원을 나무라자
“형님(나보다 2살 위임)은 가만히 있어. 공장장 저게 노조를 어용으로 만들려고 하는 모양인데 내가 막을 테니까. 형님은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나는 그를 진정시키고 대화를 나눈 후 현장으로 내려 보냈다. 그가 이러한 뱃장을 부리는 데는 그러한 배경이 있다. 그는 과거 군복무 시절 해군 유디티 출신으로 목숨을 걸고 북한을 수차 침투한 용감한 용사였다. 더욱이 그의 형은 용산 전역을 장악하는 주먹 왕이어서 평소에도 겁나는 것이 별로 없는 자였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지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 대의원이 1주일 후 사표를 내고 퇴직했다. 이유는 공장장이 돈으로 회유했다는 말만 무성할 뿐 정확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사건이 있은 20여일 후, 건장한 체격의 두 사람이 나를 찾아 왔다. 팔뚝이 웬만한 사람의 장 단지만큼 굵어 겉모양만 보아도 겁을 먹을 정도였다. 그는 그 대의원의 형이라고 했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내 동생이 왜 사표를 냈습니까?” 라고 묻는다.
나는 사실 그대로 말해 주었다. 그리고 회사가 노조를 너무 탄압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그렇습니까? 고생이 많겠습니다. 내 동생이 대의원으로 활동을 했다고 하니 앞으로 내가 동생을 대신해서 돌보아 줄 테니까 어려움이 있으면 연락하기 바랍니다.” 하면서 전화번호와 이름, 그리고 사무실위치를 알려주고 갔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가 노조를 돌보아 주기로 했다는 말을 현장에 퍼뜨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두 사건은 징계 없이 넘어갔다.
 
 그러나 노사 간 이익이 되는 사례도 있었다. 어느 해인가? 1년간 사업실적을 조사해 보니까. 예년에 비해 이익금이 훨씬 많았음을 확인하고 관례적으로 지급하던 연말 상여금 100%를. 150%로 올려 지급할 것을 회사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사장은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하루는 09;00부터 사장실에 들어가 150%지급을 주장하며 앉아 있었다. 자연히 말다툼이 계속되었고 급한 결재를 받아야 할 이사들이 사장실을 드나들며 우리와 협의해 보자고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나는 50%를 추가 지급하지 않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그러자 사장이 제안을 한다.
“노조에서 생산량을 높여라. 그러면 상여금을 더 지급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자신 있게 약속을 하고 전체 조합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서 “만약 생산성이 향상되었는데도 100%만 지급한다면 나는 큰 노사분규를 일으키든지, 아니면 책임을 지고 지부장 직을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부터 조합원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생산성을 높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1개월의 집계를 해보니까 생산량은 약 10% 증가했고, 불량품은 30% 감소되었다. 나는 이 실적을 사장에게 제시했다. 그러자 사장이 기뻐하며 연말 상여금 150%를 지급했다. 그리고 그것이 관례가 되어 기업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한편 과장급 이상 간부들은 사장에게 호된 질타를 당했다.
“노조는 지부장 말 한마디에 큰 실적을 올리는데 당신들은 많은 월급을 타면서 무얼 하느냐?”고~ 그리고 사장이 이 사실을 동아일보에 알려 기사 화 되기 도 했다.

산재사망 사건과 8시간 노동제 관철

 71년도 어느 날 출근을 하니까. 조00 조합원이 작업 중 사망했다고 한다. 그 당시 제조사업장은 1일 12시간 노동이 관례가 되어 있었고, 종업원들도 12시간 작업을 원했다. 기본임금이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전기사고로 양다리 잃은 산재환자
사망한 조00 조합원이 야근을 마치고 아침 08;00시에 퇴근하려고 하였는데. 교대 자가 연락도 없이 결근을 해서 할 수없이 곱빼기 작업을 한 것이다. 낮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20;00시에 자기 근무를 하는 바람에 연속해서 36시간의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쌓인 피로와 36시간의 연속작업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새벽 3시경에 돌아가는 쇠바퀴에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는 70대 노모와 처, 그리고 4살 된 딸과 함께 서울 사당동 무허가 집에서 살았는데. 전세방을 마련하고자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 술 담배는 일체하지 않았고 그 먼 길을 걸어서 출퇴근했다고 한다, 그의 아내도 남편의 결심에 협조하기 위해 을지로 길가에서 꽃을 팔아 한푼 두푼 모아 그런대로 희망을 가지고 힘겨운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5년만 이렇게 노력하자. 전세방을 마련하기 위해~
 나는 그가 너무나도 참혹한 인생을 보낸 것 같아서 상집간부들과 함께 공동묘지에 가서 직접 시신을 묻어주었고. 모금을 해서 조위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장례를 치룬 후, 부인이 소복을 한 채 하얀 국화를 가지고 와서
“그동안 분에 넘치는 도움을 받아 고맙습니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라고 묻자
“막연합니다.” 하면서 울먹였다. 4살 된 딸은 아무것도 모른 채, 모든 것이 신기한 듯 전화기, 책 등을 만지면서 돌아다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몇 달 후, 슬피 울던 그 부인의 모습이 가끔씩 떠올라 상집간부들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노모 혼자만 집에 있었다.
“며느님 어디 가셨습니까?”
“나라에서 나온 돈 가지고 가출했어요.”
“손녀딸은 어디 갔습니까?”
“내가 키울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고아원에 보냈지요. 어떻게 사는지 한번 가 봐야하는데…”
“……”
가장의 죽음으로 가정이 하루아침에 파괴되었고. 더 큰 시련이 가족에게 닥친 것이다.
「가출한 그 아내는 과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고아원에 갇혀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고 있을 딸아이가 한없이 불쌍했다.」
나는 이에 충격을 받아 교섭을 전개하여 1972년도부터 1일8시간 노동제를 관철했다. 그리고 잔업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켜 70%가
인상되었다.

지부장 직을 그만두면서 전개한 비상계엄 하의 농성투쟁

 총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령(계엄령보다 더 강한 것)을 선포하고 5월18일 이에 항거하는 전남대학교 학생들과 광주시민들의 시위를 잔인무도하게 진압했다.
 이어 신군부는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각계각층을 정화한다면서 탄압하기 시작했는데 노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노조간부들이 있는가 하면, 250여명의 간부가 정화되기도 했다.
나는 그해 9월 말일까지 지부장 직을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하루는 화학노조 사무국장이 어느 회의에 갔다 오더니. 나를 비롯해 수명의 지부장 직을 박탈하여 합동수사본부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노조간부들을 보다 많이 물갈이 하자는 합동수사본부의 방침인 것 같았다.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하루는 노조사무실에 있는데 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이상한 제보가 있어 왔다고 했다. 무슨 이상한 제보냐? 고 물었더니. 혹시 회사에서 돈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자. 그 돈을 어떻게 했느냐고 한다. 나는 경리장부를 보여주면서 여기에 다 기록했다고 했다. 그러자 한참동안 경리장부를 보던 그 형사는 아무 말 없이 있다가 갔다.
 돈 받은 사건은 이러했다. 구정이 닥아 오던 어느 날, 회사 총무부장이 점심이나 같이하자고 한다. 음식점에 가서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다방에 들려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총무부장이 속주머니에서 두툼한 돈 봉투를 꺼내서 내 앞으로 내민다. 나는 의아해 하면서
“이게 무엇입니까?”
“구정도 닥아 오고 해서 사장님이 떡값으로 주는 겁니다. 지부장은 선물할 때도 많을 텐데.”
“나. 선물할 데 없어요. 가져가시오.”
“부담 갖지 말고 넣어두시오. 셋만 알고 있으니까.”
“왜 셋만 압니까? 회장. 부사장. 총무전무. 경리과장. 경리계장. 경리 담당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압니까? 그리고 나중에 전 조합원이 알 텐데~”
그래도 자꾸 넣어두라고 한다. 이에 화가치민 나는
“당신. 과거에 애들을 이렇게 가르쳤어요?” (그는 과거 모 여고 수학선생이었음) 내가 화를 내면서 노조사무실로 가니까. 그가 뒤따라와서 노조사무실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갔다. 그런데 얼마 후, 서랍을 열어보았더니 돈 봉투가 거기 있었다. 나는 여직원에게 경리장부에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열린 상집회의에서 이를 공개했다.」

 그 해는 추석명절이 일찍 와서 9월에 추석상여금 지급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는 단체협약에 상여금(년400%) 지급이 명시되어 있어도 별도 교섭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사장에게 추석상여금 100% 지급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장은 20%밖에 줄 수 없다는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나는 13년간 지부장을 했고. 정권에 의해 물러나는 마당이니 마지막 선물을 주는 셈치고 100%를 지급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나 사장은 20%이상은 안 된다고 고집했다.
「마치. 너는 지금 시한부 지부장이고. 비상계엄령 하에서 어떻게 하겠느냐? 는 속셈인 듯했다.」
할 수 없이 다섯 명의 분회 장을 상경시켜 집단으로 교섭을 하였더니 50% 이상은 절대로 안 된다고 사장이 버티었다. 우리는 상의한 끝에 사업장별로 조합원을 소집하여 교섭경위를 설명하고. 그 다음은 조합원 뜻대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분회 장들이 사업장으로 내려가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상여금 교섭경위를 설명하자. 이에 격분한 조합원들이 바로 농성에 들어갔다. 각 사업장은 작업이 중단되고 농성이 밤새도록 이어졌다.
 이에 노동부와 각 경찰서가 나서서 무조건 해산할 것을 종용했다. 진해경찰서장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진해산을 안 하면 강제해산을 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했다. 나는 100%의 상여금 지급만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얼마 후 진해공장은 경찰의 진압으로 강제 해산되었고. 노조간부들은 경찰서에 연행되어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나는 본사 노조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며 두 번이나 사장 집에 전화를 걸어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100%의 상여금을 지급하든지 줄 수 없다면 사장님이 직접 안양공장(용산공장은 도시계획에 의거 폐업)에 내려가 50%밖에 못주는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그때마다 사장은 "노조에서 선동한 농성이니까 지부장이 책임지라"는 답변이었다. 그렇게 해서 밤이 지나갔다.
이튿날 아침 6시에 나는 다시 사장 집에 전화를 걸어 독촉을 했다. 그러자 사장이
“내가 가야 한다면 가지요.” 하더니 7시경 본사에 와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한다. 나는 이를 사양하고 택시를 이용해서 사장보다 먼저 안양공장에 도착했다. 얼마 후 사장이 도착하자. 어느 조합원이 “우리 돈 떼어 먹은 개×× 온다.”라고 소리친다. 사장은 그 조합원을 노려보면서 얼굴이 굳어지더니 공장장실로 들어갔다. 사장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고함소리로 농성장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사장이 공장장과 함께 농성장에 와서. 칠판에 숫자를 써가면서 매년 적자였음을 설명했다. 그러자 어느 조합원이 일어나 조합원을 향해
“야~아. 우리가 지금 수학 공부하러 여기 모였소? 이게 뭐요?” 하면서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낄낄대며 웃는 소리가 나더니
“집어치워. 치아라.” 하면서 농성장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설명은 자동적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09시가 지나자 노동부, 경찰서 직원 4명이 왔다. 그리고 나를 찾더니 대뜸
“이게 뭣 하는 짓이요?”
“뭣 하는 짓이라니요?”
“때가 어느 때인데 이런 짓을 하는 거요? 정신 나갔군!”
“무슨 짓을 했다는 겁니까?”
“지금 비상계엄령하인데 어쩌려고 이런 짓을 해요?”
“아~니, 비상계엄령 하에서는 주던 상여금을 떼어 먹어도 되는 겁니까?”
“주라는 근거 있소?”
나는 단체협약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단체협약을 한참 보더니 사장을 향해
“왜 상여금을 주기로 해 놓고 안 줍니까?”
“돈이 없어 못주는 겁니다.”
“돈이 없으면 변통을 해서라도 줘야지. 주지도 못할걸. ×빨았다고 체결해요?”
그들은 사장을 향해 막말을 한다. 그리고
“그럼 언제 줄 겁니까?”
그러자 사장이
“오십 프로는 모래까지 주고 나머지는 이십일 이내에 지급하겠습니다.”
“사장님, 약속하는 거지요?”
“예, 약속하겠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에게 틀림없이 약속 했습니다?”
“예”
이 말에 근로감독관과 정보과 형사들이 나에게 한마디씩 한다.
“사장님이 이십일 이내에 다 지급한다고 하니까 이제 농성을 푸시오.”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그 말을 어떻게 믿고 농성을 풉니까? 그리고 내가 해산을 종용해도 조합원들이 거부할 거고 오히려 반발만 커질 겁니다.”
“아~니! 우리 앞에서 사장님이 약속했는데 거짓말을 할 수 있겠어요?”
“단체협약도 무시하는데 구두약속을 어떻게 믿습니까?”
“우리가 보증하는데도 못 믿겠다는 거요?”
“보증도 좋지만, 구두약속을 어떻게 믿느냐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대안을 내시오.”
“약속어음을 주면 조합원들이 믿을 겁니다. 지금 조합원들이 극도로 흥분되어 있는데 구두약속을 믿겠습니까? 그리고 이대로 가면 연말 상여금도 어려울 것 같으니까. 연말 상여금까지 약속어음을 주면 됩니다.”
이 말에 사장은 어이가 없는 듯 얼굴이 붉어지면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자 농성은 더욱 고조되고 고함소리가 이따금 들리곤 했다.
그러자 사장이 약속어음 이외는 대안이 없음을 인지했는지 연말 상여금까지 포함한 어음을 발행하여 나에게 주었다.
 나는 약속어음을 들고 농성장으로 갔다. 이미 결과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조합원들이 열렬한 박수로 나를 맞이한다. 나는 순간적으로 찡한 가슴을 억제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아마도 힘겨운 투쟁이 있었기에 그런 것 같았다. 특히 분위기가 살벌한 비상계엄 하에서… 얼마 후, 진정을 되찾은 나는 조합원들에게 설명을 했다.
 “조합원동지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 백 프로의 상여금 쟁취는 조합원 동지들의 단결된 힘에 의한 결과임을 먼저 보고합니다. 안양공장(2개). 부산공장. 대전공장. 진해공장 조합원 동지 여러분! 참으로 위대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비상계엄령을 의식하면서 행동하지 않고 집행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면 오늘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노조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아는 조합원이었기에 오늘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나는 용기 있는 여러분을 이 세상 다 할 때까지 기억할 것이며. 다른 노조에 두고두고 자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십삼 년간 지부장으로 활동을 했던 그 직을 마감하는 이 마당에 이렇게 홀가분하게 떠나게 해 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는 오늘부로 지부장을 사임하고 부지부장에게 직무대리를 위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불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권에 의해 물러나는 것이기에 슬프기도 하고 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할 만큼 했고. 운명이 다 된 것 같기에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키워주시고 오늘의 내가 있게끔 해 주신 일천 오백여명의 조합원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내 인사가 끝나자 장내가 또 시끄러워졌다.
“골치가 아파서 그만두는 것이냐?”
“조합원들의 불신임도 아닌데 그만둬도 되는 것이냐?”
“더 해라!”
“정권에 의해 강제 사임하는 것은 무효다.”
등등 항의성 질문이 쏟아지더니. 얼마 후 즉석 막걸리 파티가 벌어졌다. 상여금 쟁취 축하파티와 지부장 송별파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조합원들이 주는 막걸리를 마구 마시다보니 취해 버렸다. 파티가 끝날 무렵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택시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시흥 쯤 와서 다시 차를 돌려 안양공장으로 갔다. 미련 때문에 도저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공장에 도착하자 조합원들은 모두 귀가했고 상집간부 몇몇만 남아 있었다.
나는 현장으로 들어갔다. 전기를 모두 꺼놓아 깜깜한 현장은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멈추어 있는 기계를 만져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울컥했다.
“이 기계 때문에 조합원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그리고 손가락이 잘린 조합원은 얼마나 많을까?”
순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슬프게 한 것인지……
“지부장님! 이제 그만 나가시지요.”
내가 현장으로 가자. 상집간부들이 뒤따라 온 것이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눈 후 택시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지나간 일을 회상했다.
「그동안 노조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번뇌가 있었던가?  몇 번의 회유를 거부하고 탄압에 맞서 투쟁한 것이 참 잘한 것이었어. 그때 그 회유에 넘어갔으면 오늘과 같은 결과는 없었겠지… 그러기에 나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인생철학이 아닌가?」
그러나 나도 처자식이 있는 가장이기에 내 앞길이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전국화학노조에서〉
조합원자격까지 박탈당한 사건
 
 1970년도에 접어들자. 화학노조 사무국장이 나보고 화학노조 상근 쟁의부장을 겸직하라고 한다.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인근에 있는 선배 지부장에게 상의를 했더니
“가지 말라고 한다. 거기가면 당신도 그네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그들의 그늘에 가려 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 가지 말고 경험을 더 쌓아 본부노조 위원장에 도전해 보라” 고까지 한다.
그래서 결정을 못하고 있는데 화학노조 사무국장이 독촉을 한다. 나는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어서 상집회의를 열었더니 전원이 겸직을 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겸직이 우리노조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결심을 하고 화학노조 본부에 상근을 하 기로 했다. 상근을 해 보니까. 위원장. 사무국장. 총무부장이 모 대학 동창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어느 날, 소나기를 맞으며 출근을 하니까 사무국장이 어느 사업장을 알려주면서 그곳에 가보라고 한다.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참 후 택시를 타고 가는데 그 지역이 가까워오자 택시기사가 더 못가겠다고 한다. 당시 그 지역은 서울확장공사로 정지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길이 엉망이었다. 할 수없이 무릎까지 빠지며 약 1km를 걸어 그 사업장을 갔더니 정문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넘어뜨리며 때리기까지 한다. 이에 내가 남자들을 향해
“당신들 누군데 사람을 그렇게 때려?” 하니까. 그들이 나를 노려보며
“당신은 누구요?”
“노동청 근로감독관이오. 왜?”
그러자 남자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사업장으로 들어간다. 나는 여자들을 데리고 그들의 자취방에 가서 사연을 들어보니까. 노조를 결성했는데 며칠 째 남자들이 사업장에 못 들어 가게하며 구타를 한다고 했다.
나는 화학노조가 안 이상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그들과 헤어진 후, 비를 맞으며 뛰고 걷기를 반복하면서 시내에 와서 택시를 타고 본부노조에 왔다. 그리고 위원장과 사무국장에게 보고하며 사태가 시급하니 빨리 서둘러야 그들과 노조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위원장은 느긋했다. 10여일이 지나자 조직부장이 그 사업장에 갔다 오더니 귓속말로. 앞장섰던 그 여성들은 모두 해고 되고 회사가 내세운 자가 지부장이 되었다고 한다.
「노조를 결성해서 다소 나은 생활을 해 보려던 그 여성들은 오히려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어찌 책임을 진단 말인가?」
 이러한 사례가 수차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위원장에게 따지면. 위원장은 희생당한 그들은 밀알의 역할을 했으니까. 노조결성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괴변을 늘어놓곤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쟁의발생신고를 한. 크라운맥주(화이트맥주)노조 지부장이 위원장과 대화를 나눈 후, 나보고 다방에 가자고 하여 갔더니 그가 흥분을 하면서
“위원장이 나보고 지부장 직을 물러나라고 하면서 쟁의행위 신고서(그때는 지부인준권. 쟁의행위승인권. 조합원징계권이 본조에 있었음)승인을 못해주겠다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느냐?” 하면서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린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화가 나서 일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 무렵 사무국장과 심하게 다투었다.
그 후로 위원장은 나를 못마땅해 하면서 지부장들이 본부노조에 오면 나를 나쁜 놈으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조직적으로 나쁜 놈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모 선배지부장이 본부노조에 와서 위원장과 한참 대화를 나눈 후, 나에게 다가오더니
“조직 인이 그러면 못써.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각기 놀면 되겠어?”
이에 내가
“선배님이 무얼 안다고 나를 나무래요? 모르면 가만이나 있어요. 그리고 여기가 도둑질하는 데요? 그런 도둑질은 손발이 안 맞아도 돼요.”
“그게 무슨 소리여?”
하면서 의아해 한다. 이에 내가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니까요?”
“……?”
 그런데 위원장이 며칠 출장을 간 어느 날, 산하조직에 급하게 보낼 공문이 있어 사무국장과 상의를 했더니. 우선 공문을 발송하고 후에 위원장에게 결재를 받으라고 한다. 나는 지시를 받고 공문을 발송했다. 며칠 후, 출근한 위원장이 나를 보자고하기에 위원장 실에 들어갔더니 미결제 서류를 보여주면서
“이 서류를 왜 내 결재 없이 발송했어?”
“급한 서류이기 때문에 사무국장과 상의했더니. 후에 위원장님에게 결재를 받고 우선 발송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위원장이 사무국장을 들어오라고 하더니
“당신이 내 결재 없이 이거 발송하라고 했어?”
이에 사무국장이 멈칫 하면서
“글~세. 생각이 안 나는 데요?”
이에 내가 사무국장에게
“국장님이 그랬잖아요. 우선 발송하고 후에 위원장님께 결재 받으라고~”
“내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러자 위원장이 나를 보면서
“거봐. 기억이 안 난다고 하잖아.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월권행위를 했기에 그냥 넘길 수 없어”
하면서 나보고 나가라고 한다. 그리고 전문위원들과 장시간 회의 하더니
나에게 「지부장 직과 조합원자격까지 박탈한 징계」를 내렸다. 그러면서 지부장 직무대리는 본조전문위원인 총무부장이 임명되었으니 그리 알라고 한다. 그리고 회사에도 공문을 보내 이호승은 화학노조규약에 의거 지부장 직이 박탈되었으니까 지부장 전임을 해지하라고 통보까지 했다.
나뿐만 아니라 전에도 화학노조 산하 지부장 수명이 어떤 이유로 징계를 받아 물러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노사분규가 될 수 있음을 염려했는지 방관하고 추이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노조 상집간부와 대의원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0여명이 본조에 몰려가 심하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당신들이 무슨 권한으로 우리가 뽑은 지부장을 해임시켜?”
“직무대리가 어떤 놈이야? 정중히 모실 테니까. 가시지?”
그리고 직무대리가 오면 죽여 버린다고까지 했다. 그래서 직무대리는 우리 노조에 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10여일 후, 사무국장이 우리노조에 왔다. 우리는 술집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노동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나는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심하게 질타했다. 그러자 사무국장이 눈물을 흘리며
“그래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아우님이 하자는 대로 할 테니까 나를 용서해줘.”
그 후 나의 징계사건은 흐지부지 되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다음 임원선거에 위원장은 입후보하지 않았다.

권력의 탄압에도 꿋꿋했던 삼성제약노조

장기 집권했던 전국화학노조의 위원장이 바뀌자. 신임 위원장은 나보고 같이 일하자고 하면서 교육부장을 맡아달라고 한다.
그리고 계획을 세워 조직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즉 미조직사업장을 파악하고 그 사업장을 찾아다니면서 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서울 성동구(현 광진구)에 위치한 삼성제약이었다. 종업원들이 퇴근할 무렵 본부노조간부들이 그 회사 근처에 가서 있다가 퇴근하는 종업원을 붙들고 노조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 귀찮게 생각하고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삼성제약 종업원들이 어느 날 어디로 놀러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당일 먹거리를 사서 쟁의부장과 함께 그 곳을 찾아갔다. 그러자 김영순(후에 지부장) 양이 우리에게 짜증을 내며
“왜 이곳까지 와서 우리를 귀찮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먹거리를 주면서 노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자 김영순 양이 나중에 만나자고 한다.
 문제는 그 회사에 사장비서가 지부장으로 되어있는 유령노조가 설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루는 유령노조가 총회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종업원들이 총회장에 몰려가 회의를 무산시키고 별도 모임에서 권오선을 지부장으로 선출하였는데, 그가 곧 사임을 하고 부지부장인 김영순이 지부장이 되었다. 노조에 눈뜬 종업원들이 주동을 한 것이다.
김영순 지부장과 김은임 부지부장(현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 여성국장)이 이끄는 삼성제약노조는 무섭게 발전했다. 타 사업장보다 임금이 낮은 것을 알게 된 그들은 분노를 느끼면서 노조를 이끌었다. 그리고 교육과 토론을 통해 조직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짧은 기간에 다른 노조보다 월등한 힘을 보유하는 노조가 되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삼성제약에 파업이 발생했다. 당시 일 년에 130~150%의 상여금을 지급 받았는데 회사가 법정관리가 되면서 연말 상여금을 한 푼도 못주겠다고 하자. 연말 상여금 100%를 요구하는 분규가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 삼성제약노조는 여성조합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본부에서 여성부장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여성부장은 서울대학을 나온 수재였지만 현장사정을 잘 몰랐다. 얼마 후 여성부장이 화가 난 채 씩씩거리며 본부노조에 들어오더니
“나쁜 년들! 나를 망신 줘?”
“어찌했기에 망신을 당하고 온 거야?” 내가 물었다. 그러나 여성부장은 답변을 않은 채 나에게 화를 내면서 위원장실로 들어간다. 얼마 후 위원장이 나보고 조직부장과 함께 삼성제약 파업을 지도하라고 한다. 나는 조직부장과 함께 파업현장에 갔다. 조합원들은 탈의실 안에서 문을 잠그고 농성 중이었다. 나는 문틈으로 지부장에게
“지부장. 나야 나. 문 좀 열어.”
“나도 못 열어요. 연말상여금 일백프로를 안주면 그 누구도 못 열어요.”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안 되었다. 탈의실을 둘러보았더니 위에 작은 창문이 있었다. 우리는 망치로 창문을 부스고 좁은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똥. 오줌 냄새가 진동했다. 대소변을 드럼통에 모아 두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어가자 지부장도 울고 조합원들도 울었다. 그런데 어느 조합원이
“아이 구. 어떻게 해~ 어제 밤 우리 아기한테 젖을 못 주었는데. 나는 집에 가야 돼…”
“우리 애들은 아침에 밥이나 먹고 학교에 갔는지 모르겠다. 나도 집에 가야 하는데…”
“안 돼! 상여금이 해결되기 전에는 한사람도 집에 못가.” 하면서 상집간부가 조합원들을 나무란다.
우리는 격려의 말을 한 다음 지부장을 설득하여 단체교섭을 하게 했다. 
조직부장과 나는 사장과 지부장의 의견을 조율하여 연말 상여금은 우선 50%지급하고 앞으로 논의를 거쳐 연 400% 상여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데 합의했다.
회의가 끝난 후, 내가 지부장에게 물었다. 왜 본조여성부장을 화나게 했느냐고~ 그러자 지부장이 말하기를. 파업현장에 오기 전. 공장장을 먼저 만난 것도 기분 나쁜데. 그가 파업현장에 들어오더니 대뜸
“이게 무엇 하는 짓이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좌우간에 그 말에 화가 치밀어 있는데 옷을 보니까 고급 일본산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합원들에게
“야~ 여기 귀부인 오셨다. 방석 갔다 드려라. 귀 부인께서 이 지저분한 바닥에 앉을 수 있냐?” 하면서 강제로 방석위에 앉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부장이 나가자 그 누구도 파업현장에 못 들어오게 문에 대못을 쳤다는 것이다.
여성부장이 큰 실수를 한 것은 파업현장에 오기 전 경비원의 안내로 먼저 공장장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본부노조 간부들이 아주 조심해야 한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파업현장을 갈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삼성제약노조는 화학노련의 대표적인 ‘민주노조’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신군부의 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다. 삼성제약 김영순 지부장도 정화를 당했다. 하루는 김영순 지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만나자고 한다. 내가 약속장소인 서울 광화문 어느 다방으로 갔더니 7명의 상집간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자는 이유는
“정화를 당했는데 어찌하면 좋으냐?”는 것이다.
나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이기에 망설이다가
“지금 분위기가 험악하니까 잠시 피하는 셈치고 노조 급사로 직을 바꾸어 노조를 지키고 있으면 어떠냐?”고 했다.
그러자 지부장이 한참동안 생각을 하더니
“그런 방법도 있군요. 그러나 내가 아무 잘못이 없는 이상 지부장 직을 고수하는 것이 정당한 것 아닌가요?”
나는 그 말에 답을 주지 못했다.
그 후 지부장과 부지부장이 노조사무실에서 건장한 청년 3명에 의해 어디론가 연행되어 갔다고 했다. 그러다가 수십일 후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고 내가 찾아가서
“아니. 어디 갔다 왔어?”라고 하자.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 하고
“이 부장님 안 보여요.” 하면서 지부장의 눈동자가 이상했다. 나는 무엇이 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저렇게 가혹한 짓을 했단 말인가?」
그들은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되어 갔다 왔다고 했다. 그러나 삼성제약노조는 군부의 탄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부장과 부지부장이 합수부에 끌려가고 회사에서 지부장 교체 움직임이 있자, 조합원들은 노조를 지키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방어망을 쳤다는 것이다.
 그 후 지부장은 김은임 부지부장에게 지부장 직을 물려주고 스스로 물러났다. 그래서 정권에 맞서 정화를 거부한 유일한 조직이 되었고. 후배들에게 큰 교훈이 되는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남겨 주었다.
 회고하면 살벌했던 독재정권 당시 여성 동지들이 이 나라 노동운동의 맥을 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여성이 이끄는 노조들이 정권과 기업주에 맞서 투쟁한 역사를 남겼기 때문이다. 한국화장품노조. 삼양식품노조. 모나미노조. 피어리스노조결성사건. YH무역노조. 원풍모방노조. 동일방직노조사건 등등. 모두가 여성들이 앞장서서 노조운동사를 기록하였기에 말이다.

위장 취업(?)하여 조직 확대를

 또 화학노조는 조직 확대의 일환으로 본부 상근간부가 미 조직사업장에 취업하여 노조를 결성하기도 했다. 70년대 중반. 서울에 소재한 000사업장에 화학노조 간부가 취업을 했다. 그는 사업장의 분위기를 파악한 후. 우선 임금이 낮은 여성들을 개개인 상대하며 노조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공감대를 형성한 후, 노조를 결성했다.
그러나 비밀이 지켜지지 않았다. 회원 중, 누가 회사에 밀고를 한 것이다. 회사는 조합원을 감금해 놓고 노조탈퇴를 강요함과 동시에 노조를 비난하는 교육을 실시한다고 했다. 정보를 입수한 화학노조는 경인지역에 있는 지부장회의를 소집하고 조합원 동원령을 결의했다.
 약속한 날. 약 500여명의 조합원이 000사업장 정문 앞에 집결했다. 행동대장은 내가 맡았다. 어느 정도 모인 것을 확인한 나는 조합원을 이끌고 사업장 안으로 처 들어갔다. 그리고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고함소리가 나며 시끄러웠다.
그 무렵 3층에서 회사가 조합원을 압박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시달림을 받다가 밖을 보니까. 자기네들을 구하러 온 화학노조 조합원들임을 알게 되자 3층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밑에서 여러 명이 받아 부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감금된 조합원들이 우리와 합세해서 회사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회사 생산이사가 겁도 없이 우리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악질로 노조 탈퇴를 종용하며 강압하였다는 생산이사의 멱살을 잡아 끌어냈다. 그러자 조합원들이 달려들어 구타를 했다. 생산이사를 보호하던 경찰서 정보과 형사도 구타를 당하며 옷이 찢어지기도 했다. 그 사태로 인해 싸움이 소강상태가 되었다.
 한편 사태가 심각함을 인지한 노동부와 경찰서가 중재하여 화학노조와 회사 측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그 만남에서 앞으로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합의함과 동시에 기왕이면 대상종업원을 전수 노조에 가입시켜 노조 결성대회를 다시 하자는데 합의하고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한국노총 쟁의지도국장으로

 나는 정권에 의해 노조 지부장 직을 박탈당한 후 현장에 가려고 하였지만. 회사 측에서 적극적으로 막았다. 그러면서 기본임금은 줄 테니까 쉬라고 한다. 내 후임 위원장도 마음이 변하여 회사와 함께 나를 막았다.
「내가 현장에 오면 조직분규가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노총에서 나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화학노련이 막았다. 선거 때 내가 사무처장 후보에 내정되어 당시 위원장, 사무처장에 당선된 자들과 싸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노총에 가지 못하고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참으로 답답하고 지루한 2년이었다. 하루는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만났더니. 화학노련과 얘기가 잘 되었으니 다음 달부터 노총에서 일을 하라고 한다. 한국노총에서 쟁의부장을 맡은 지 1년 후에 쟁의지도국장(현 노사대책국장)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독재정권 타도와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는 학생데모가 연일 일어남에 따라 전두환 정권은 할 수 없이 6.29민주화 선언을 했다.
그로 인해 각 사업장에서 농성 파업이 연일 발생하여 노사분규가 극심해 지기 시작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발발한 것이다.
 그 당시 노총 내에서 제일 바쁜 부서가 쟁의지도국이었다. 나는 밤도 없고 일요일도 없었다. 노총회관에 줄지어 농성 팀이 들어왔고. 파업하는 사업장을 순회 방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산의 모 사업장에서는 회사 간부들이 여자 조합원들을 쇠파이프. 몽둥이 등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하여 중경상을 입은 수십 명이 병원에 입원했었다. 사건을 접수한 내가 현장에 도착해서 조합원들과 함께 회사 측과 싸웠는데. 노사분규가 장기화 되면서 결국 회사가 폐업하고 말았다.
 사용자들도 많은 보복을 당했다. 회사임원을 조합원들이 가마니에 둘둘 말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사건도 있었고. 인천의 어느 사업장에서는. 노사담당 이사에게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질러 사망케 한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노•노 싸움도 극심했다. 특히 「어용노조 물러가라」는 외침이 많았다. 마산의 어느 사업장에서는 노조가 양편으로 갈라져 돌팔매를 하며 극렬하게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 돌에 맞아 부상을 당한 조합원을 부축하여 병원에 가려고 하자. 반대편의 조합원들이 부상당한 조합원까지 구타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개입하자. 기존노조는 받아드리고. 반대파는 어용노총 관여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를 배타했다.
 근로감독관도 수모를 당했다. 울산의 모 노조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에 오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근로감독관을 넣어 얼굴만 나오게 하고 묻어버린 서부영화 같은 사건도 있었다.
 나는 노총산하 조직이든 노총을 배타하는 전노협(00노총 전신) 노조든 간에 노총에 들어오는 농성 팀은 가리지 않고 정성껏 돌보아 주었다. 일부에서는 비난도 있었다. 왜? 노총을 배타하는 노조를 돌보아 주느냐고…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그동안 한국노총이 신뢰를 얻었으면  저들이 노총을 배타하겠느냐고… 물론 잘한 것 도 많았지만~
 하루는 경비원이 밤에 문의전화가 많이 오는데 경비원이 답변하기는 역부족이라고 한다. 이에 나는 밤중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말고 전화가 오면 우리 집으로 연결하라고 했다. 그로 인해 나는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내가 노총에서 활동한 몇 달 후, 회사에서 나의 임금지급을 일방적으로 끊었다. 사장을 만나 왜 임금을 안 주느냐고 말했더니.
“노총에 갔으면 노총에서 월급을 받으시오. 회사에서 줄 의무가 없지 않소?”
후배 위원장에게도 말했지만 무관심이었다. 회사와 이미 합의한 것 같았다.
나는 실망했다. “이것이 배신이구나!”
몇 년 후 그 후배 위원장은 위암으로 죽었다. 그러자 조합원들 사이에서 선배위원장을 배신한 죄로 죽었다는 좋지 않은 말이 한동안 떠돌아 다녔다.
 임금이 중단되자 생활고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아내가 언니의 한복가계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받는 돈으로 생활을 했다. 이를 눈치 챈 당시 고2였던 아들이 대학을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한때 애를 먹기도 했다.
어떤 때는 버스비가 없어서 신림동에서 여의도까지 걸어서 출퇴근을 하 기도 했다. 점심 값이 없어 때가 되면 남몰래 혼자 나와 여의도 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내다가 사무실에 들어갈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밤늦도록 노총을 지켰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해고되고 구속되어 나보다 가혹한 생활을 하는 동지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노조운동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한국노총에서…
그럼에도 농성자 중에는 노총간부들을 향해 “노동귀족”이라고 소리 지르는 일도 있어 속이 상했다. 나도 생활고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2년을 버텼다. 내가 임금을 못 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어느 동료가
“그렇게 미련 떨지 말고 다른 기업에 손을 내밀어 보라”고 한다. 그때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노사관계를 잘 봐주겠다는 조건 하에 다른 기업에 취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나는 그 짓이 싫었다.
그 후 노총 위원장이 사실을 알고 임금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씩 그때를 연상하면서 위원장과 조합원에게 감사하고 있다.
 

000지방 노동위원회의 어이없는 판정

 1989년도 00지역에 소재한 모 병원의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사용자측은 노조 결성에 앞장선 7명을 해고했다. 이에 000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였는데. 어이없게도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정을 내렸다. 그들이 재야 권과 연계되어 있다는 뒷소문 때문이었다.
 사건이 해결 안 되자. 한국노총까지 지원요청이 왔다. 나는 그들에게서 사연을 듣고 그냥 넘길 사건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이튿날 그 지노위가 위치한 노총산하 지역지부에 인원동원을 부탁하였더니 회의를 끝낸 노조간부 10여명이 왔다. 나는 그들과 함께 000지노위 위원장실로 쳐들어갔다. 이럴 때는 점잖게 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나는 지노위 위원장과 인사를 나눈 후 탁자를 내리 치면서
“지노위가 무엇하는 곳이요? 그리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요? 노동자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해고를 동조하는 이따위 지노위가 필요한 것입니까?”
지노위 위원장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일행 중 한사람이 재떨이를 창문으로 던져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노동자가 헌법에서 보장한 단결권 행사를 했는데 그게 불법이라고요? 그리고 일곱 명이나 해고를 당했는데 그게 정당하다고요? 이에 대해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조목조목 따졌다. 지노위 위원장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다가
“듣고 보니까 판정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재심하는 방향으로 논의해 보겠습니다.”
“논의가 아니라 재심을 하 기 바랍니다.”
나는 백지를 지노위 위원장에게 주면서
“이것은 엄연한 오심이니 다시 판정을 바랍니다.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시면 여기에 잘못 판정되었으니 재심을 하겠다는 확인서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지노위 위원장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재심을 하겠다는 확인서를 써서 나에게 주었다. 그 후, 이 사건은 판정이 번복되어 7명 전원이 복직되었다.
 
분신자살 사건

 내가 쟁의지도국장으로 있을 때 일이다. 하루는 경기도 성남시에 소재한 모 단위노조 위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탁인즉, 조합원교육을 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내가 “당신네 들은 전노협(00노총 전신)소속인데 왜 나에게 교육을 부탁하느냐?”고 물었더니. “지금 우리 사업장에서 2~3개월째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데 파업이 계속되면 기업이 폐업 될 수도 있다면서 기업도 살리고 일터를 지키기 위해 전노협을 탈퇴하고 한국노총 산하조직으로 옮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조합원 성향을 물었더니 반수는 그냥 전노협에 있자고 하고. 반수는 한국노총으로 옮기자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분위기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고심 끝에 교육을 수락하고 약속한 날. 그 사업장에 갔다. 위원장과 함께 교육장소인 식당으로 갔더니 의자가 모자라서 양쪽과 뒤에 서있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약 200여명은 되어 보였다. 강연이 시작되자. 가끔씩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나도 모르게 신바람이 나서 약속된 90분을 넘겨 110분의 강연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10분 동안에 잡담하는 조합원이 한사람 없이 진지하게 강연을 경청하는 모습에 내가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교육이 끝나고 저녁을 먹으면서 위원장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당시 독재군사정권타도를 위해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연일 극렬한 데모를 하는 한편,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인간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노동자를 돕기 위해 대학생 약 3,000명이 문제가 있는 사업장에 위장취업(?)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 사업장에도 여학생이 취업을 했다는 것이다. 그 여학생은 노조 쟁의부장에게 접근하여 철저한 의식화 교육을 통해 「노동운동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 이라고 주입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업장에 파업이 발생하자. 그 여학생의 신호에 따라 쟁의부장이 휘발유를 몸에 뿌리고 분신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위원장은 과격한 노조운동은 노사양쪽에 큰 손해를 끼친다는 판단 하에 마음을 돌려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분신자살한 그는 노조발전에 밑거름이 되어 영웅(?)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가족은 평생을 두고 노조를 원망할 텐데 그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진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괴로움을 면할 수 없다고 했다. 그 후 그 노조는 한국노총에 가입을 했다.
 한국노총이 독재정권 이전에는 잘한 것도 많지만. 지탄받는 일도 많이 했다. 그래서 한때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노동계의 큰집으로 책임감을 느끼며 임직원들이 노력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임금삭감 없는 주 44시간제 관철 투쟁

 나는 1988년도에 노동시간 단축을 하고자 노총 국장회의 때 이 문제를 제안했다. 주 40시간 노동제 이전에. 우선 주 44시간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왜냐하면 줄어든 노동시간의 임금이 깎이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모 사무차장은 “이거 통과되면 이호승은 죽는다. 조합원들이 몽둥이를 들고 노총에 처 들어와 삭감된 임금 책임지라고 난동을 부릴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고 했다.
그러나 나는 임금이 깎이는 노동시간 단축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몇 백 년이 가도 주 40시간 노동제를 실현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내 주장이 받아들여져 정책연구실과 함께 계획서를 작성해서 국회, 노동부를 상대로 활동했다. 다행히 모두 당위성을 공감하고 협조해 주어 순조롭게 개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노동부에 의해 사건이 터졌다. 노동부가 각 지방사무소에 단축된 4시간분의 임금은 사업주가 지불할 의무가 없다고 시달한 것이다.
나는 즉각 산별연맹 쟁의국장 회의를 소집하고 이에 대한 경위를 설명한 뒤,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니 노동부를 항의방문하자고 결의했다. 그리고 4~5명씩 조를 짜서 각각 다른 부서를 방문하는 것으로 신청한 후 23명이 일시에 노동부장관실로 쳐들어갔다. 이에 당황한 노동부 국〮·과장들이 몰려와 장관실이 엉망이 되었다. 그러자 장관 비서실장이
“여기서는 도저히 회의가 안 되니 회의실로 가자고 한다. 그러면 장관님을 모시고 가겠다.”고 한다. 회의장으로 갔더니 얼마 후 낯선 사람이 나타나 장관님이 지금 급한 일로 출타했으니 제가 대신 듣고 장관님에게 보고 하겠다고 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
“당신 누구요?”
“예. 기획실장입니다.‘
“우리가 기획실장 보러 여기 온줄 알아요? 안되겠구먼. 모두 장관실로 다시 갑시다.”
그리하여 장관실로 갔다. 그러나 장관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모두 여기서 밤을 새웁시다. 내일이면 오겠지!” 하면서 밤 10시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러자 경비대장(경찰)이 와서
“여러분은 지금 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해산 안하면 현행범이 될 수 있습니다.”고 협박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
“현행범이면 구속하면 될 것 아니오? 빨리 잡아가시오.”
“누가 구속한다고 했습니까?”
“그게 그 말이지 뭐요?”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을 우려했는지 노동부 국장들이 경비대장에게 나가라고 한다. 분위기가 조용해지자 000국장이 나에게
“내일 10시에 책임지고 장관을 면담시켜 줄 테니까 오늘은 이만 해산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를 한다. 그러자 산별연맹 국장들이 그게 좋겠다고 한다. 우리는 면담약속을 재확인하고 노동부를 나왔다.
 이튿날 오전 9시에 노총에서 노동부를 가려고 하는데 0000국장과 00과장이 노총에 왔다. 나는
“아니~ 지금 노동부를 가려고 하는데 왜 왔습니까?”
“잠시 나하고 얘기나 합시다.”
“무슨 얘기?”
“장관님이 지금 안 계시니까 나하고 대화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가지고 있던 서류봉투로 국장의 면상을 쳐버렸다. 그리고
“뭐 이따위가 있어! 나를 조롱하는 거요?”
그러자 000국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00과장이 일어나면서
“씨~ 이” 하며 나를 노려본다.
“뭐? 씨~ 이? 너 사람 잘 쳐?”
그러자 국장이 과장에게 “가만있어.” 하면서 화를 낸다. 나는 국장을 향해
“노총을 어떻게 보고 이러는 거요? 노총에 들어 올 때는 당신들 마음대로 왔지만 나갈 때는 마음대로 못나가. 나가고 싶으면 임금 삭감공문을 철회하겠다는 각서를 써놓고 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못나가.”
그러자 국장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백지와 볼펜을 그의 앞에 놓았다. 한참 후 그는 결심을 한 듯
“주 44시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된 임금삭감의 공문을 철회한다.”는 각서를 썼다. 그렇게 해서 임금삭감 없는 주 44시간 노동제가 실시된 것이다.
 그 후 그 국장은 국회 노동전문위원으로 좌천되었고. 00과장은 옷을 벗는 유감 된 조치가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참으로 미안했다. 그러나 일천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위해 내 직책을 걸고 행한 일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후배들에게

 노동자는 과거나 지금이나 사회의 각 분야에 비해 뒤처진 생활을 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하여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건만 그리고 임금 및 근로조건개선을 위해 각 노조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투쟁했다고 하지만 노동자는 언제나 생활고에 시달려왔고 그로인해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천팔백만 여명의 거대한 바다! 그러나 파도의 기능이 없는 바다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바다는 파도를 거칠게 쳐야 두려운 존재가 된다. 경제성장의 주역이면서 자본의 희생물이 되어온 아픔을 알면서도 노동자는 파도가 될 줄 모르고 잔잔하게 흐르기만 한다.
  일천팔백만 여명의 임금 노동자 중에 10%도 안 되는 일백오십 여만 명이 노조에 가입된 현실! 거기에 노총이 4개로 갈라져있고 산별연맹 역시 쪼가리가 나서 어떤 연맹은 힘 한번 써 보지 못한 채,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단위노조는 복수노조에 의거 찢어져 있는데도 조합원끼리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나 정치권이 왜 복수노조를 강제했을까? 노동자를 누더기처럼 찢어놓기 위해 강제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누더기가 되고 있어도 상대방을 더 찢기 위해 찢고 또 찢으며 싸우고 있다.
노동자들이 찢고 싸우는 사이에 경제는 성장되고. 그 이익금은 고스란히 기업주의 금고로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어떤 기업주들은 수십억 원. 아니 일백억 원이 넘는 연봉을 챙기고 있어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고임금 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저임금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감당하기 힘든 생활비, 교육비, 그리고 치솟는 전월세 값 등을 충당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빚을 지고 있건만 기업주나 정부는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외면하고 있다. 2년마다 집 전세 값이 무한정으로 치솟고 있다. 그래서 서민들은 2년마다 은행융자를 받아야 산다. 월세도 자꾸 올라가 임금노동자들은 한숨이 저절로 나오고 살이 떨릴 지경이다. 살길이 막막하다는 증거이다.
 이에 질세라 정치권도 절박한 민생문제를 시장에 맡겨놓은 채, 여•야가 싸움질만하고 있으니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지 화가 치민다. 어느 양심 있는 국회의원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까. 많이 배운 자. 머리 잘 굴리는 자. 재산이 많은 자가 대다수 국회의원이여서 어려운 사람들의 비참한 삶이 가슴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 서민출신들 다수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국회가 원만하게 운영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국회의원의 말을 우리 1.800만 노동자들은 심각하게 받아드려 선거 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잘나고 돈 많은 자만이 정치를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돈 많은 정치인은 돈 많은 자들을 위해 정치함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
유럽이나 남미국가들을 보자. 노동자출신이 대통령도 되고. 장관. 국회의원에 다수가 포진하고 있지 않는가? 아마도 그들 나라들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국민의 의식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데 노동운동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삭발하는 필자
 
 과거 한국노총 박종근 위원장이 노동법(총액임금제)개악반대를 위해 단식투쟁을 한 바 있다. 그리고 박인상 위원장은 삭발투쟁을 했다. 그때 모든 노조가 일시에 투쟁에 동참했다면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방문객은 있었어도 투쟁에 동참한 조직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것은 노총 몫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비정규직은 무엇이고 파견 직은 무엇인가? 임금을 착취하는 수단이 아닌가? 마음대로 해고하고 마음대로 차별대우를 해도 방관하는 정부가 한심스럽다. 이들 젊은이 들은 지금 분노하고 있다. 희망이 꺾인 채 앞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오고 열심히 일해도 월 1백50만 원 이하의 임금에 머물고 있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내수시장이 얼어붙다시피 하고 있어 상인들의 한심을 자아내고 있다. 이 들은 신분이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40대가 되어도 결혼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래서 젊은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층이 늘고 있는 국가적 비운을 맞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국가가 법이나 제도로 젊은이들의 앞을 가로막고 희망을 잃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고로 모든 노조는 소속사업장에 비정규직노동자가 있으면 투쟁을 해서라도 정규직화 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법을 떠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나(정규직)만 괜찮으면 된다는 사고를 버리자. 99마리의 양보다 길을 잃고 헤매는 1마리의 양을 찾아 길을 떠나는 노조가 되자. 그래야  올바른 노동운동의 역사가 기록되고. 후배들에게 정신적 유산을 남겨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240여개 국가 중, 계속해서 산재발생률 1위를 기록해 왔다. 2013년도부터 2위가 되기는 했지만~ 그러나 지금도 1년에 10여만 건이 발생되고 그 중 매년 2천여 명이 죽고. 2~3만 명이 장애인이 되어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하여 누계 산재 인이 4백5십만여 명에 이르며 지금도 자꾸 늘어나고 있다. 가장이 죽거나 장애인이 된 가정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정이 해체되기도 한다. 그들도 직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그들에게 직장을 주지 않는다.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를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하면서 생을 저주하는 지루하고 억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기업주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안전교육을 필했다는 가짜공문을 만들어 고용노동부에 제출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그 뿐만 아니라 작업 중 사망하거나 4일 이상 치료를 요하는 부상을 당하면 당연히 산재로 신고하여야 하거늘 이를 은폐하여 공상으로 처리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니 노동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는 셈이다.
 혹시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노조가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육~칠십년 대에 선배노동자들은 이 나라 경제성장을 위해 기아임금에 허덕이면서 “선 성장, 후 분배”의 기만적 정책에 속아 일하고 또 일해 왔다. 워낙 저임금이었기에 밥만 먹고 근근이 살아왔다. 어찌 생각하면 전세방 얻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로인해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지도 못했다. 그러한 정부정책에 의거 기업주들은 엄청난 부(富)를 쌓았지만. 노동자들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50대에 직장을 마감해야만 했다. 자식들은 “나를 왜 이렇게 길렀느냐?”고 원망하며 부모 곁을 떠났다. 이제 고령자가 되어 먹을 것이 없고. 병에 시달리고. 고독하여 자살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그래서 세계 제일의 자살국가가 되었다. 1년에 평균 1만5천여 명의 자살자가 발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복지가 한심스럽다. 2013년도 현재 OECD국가의 평균 빈곤 율은 12.6%인데, 우리나라는 49.6%라고 하니 분통이 터진다. 후배들도 이러한 비극을 이어받을 것인가?
 부(富)의 편중이 너무 심하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상위 1% 국민이 18%의 재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하위 40% 국민이 3%의 재물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는가? 누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했는가? 정치권과 정부가 그렇게 했다. 법과 제도가 그리고 정부정책이 그렇게 되게끔 만들었다.
 흔히 다음과 같은 말을 많이 한다.
「박정희 정권 때. 독재정치를 하면서 노동자에게 저임금지급. 장시간노동. 그리고 인권을 묶어놓고. 싼 상품을 생산하였기에 수출이 가능했다고~ 그로인해 지금 우리나라가 자본을 쌓을 수 있었고. 산업기술을 개발하여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그러나 노동자를 경제성장의 희생물로 삼아야만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희생당한 노동자출신들은 지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그것은 당연한 것인지? 묻고 싶다.
 경제성장은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노력한 결과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노•사•정이 주역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경제성장의 대가로 기업주는 엄청난 부(富)를 가져오게 했고. 공무원. 군인. 교원출신은 본인이 지불한 금액과 국민의 세금으로 사망할 때 까지 의식주가 해결될 수 있는 연금을 지급받고 있다. 그러나 저임금과 온갖 고통에 시달리면서 힘든 일을 한 노동자는 용돈도 안 되는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 노동자와 서민들은 왜 과거나. 지금이나 빈곤에 시달려야만 하는가?
 지금 세계는 「기본소득」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국가가 지불해야 된다는 운동이다, 즉, 굶고 병들어 고생하는 국민이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대표적인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에서 부터 시작하였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법인세를 올려 자살을 최선으로 선택하는 빈곤층을 구제해야 한다. 아니면 경제인연합회. 경영자총협회. 상공회의소. 노동조합총연맹. 그리고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모금(연금 형)을 해서라도 고통 받는 고령자들을 도와야 한다. 
 그래서 참다못해 선배들이 전국시니어노조(위원장 박헌수)를 결성했다. 고용노동부에서 2014년 5월8일 설립신고증이 교부되었다. 시니어노조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법으로 보장받은 것이다.
50세 이상을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 이하의 연령층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취업여부 상관없이 조합원이 될 수 있으며. 복수조합원이 되어도 된다. 1년 조합비가 1만2천원이다. 보다 많이 가입하여 시니어 노조를 키워야 한다. 그래서 수십만 명이 조합원이 되어. 정부와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여 잘못된 정책과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흔히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시니어 노조에 가입하면 지금 당장 나에게 무슨 이익을 주느냐고~」
노조는 먼저 무엇을 쌓아놓고 이익을 주는 조직이 아니다. 초기에는 약자들이 보다 많이 모여서. 강한 조직을 만들어 함께 노력하고 투쟁해서 우리의 힘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는 이익이 쌓이는 것이다.
 지금, 대통령을 꿈꾸는 분도. 육군 장성 출신도. 현직 교수들도. 박사들도. 목사님도. 예술가도. 월남파병단체도. 산재장애인단체도 한국노총 임직원들도 시니어 노조에 가입되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목표와 방향이 없는 노조는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철저한 장·단기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정진해야 한다. 그 길은 가시밭이라서 필연적으로 피가 나게 되어있다. 그러나 피가 흘러도 그 길을 가야한다. 피가 난다고 해서 가는 길을 멈추면 노동운동이 아니다. 정치권이나 정부, 그리고 기업주가 그 길을 막으면 하나 되어 투쟁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성장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려면 노동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노동교육은 노동운동에 있어서 달리는 자동차에 기름을 공급해 주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체성과 자주성을 확립하고 조직력을 강화해서 노사대등을 항상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노사 간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을 망하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기업을 절대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은 노동자의 일터이자. 가정을 안정시키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주는 원천이기에 노동자들이 기업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기업을 발전시키고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경제대국이 되게끔 노동자들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에게 부여한 사명임을 모든 노동자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익을 빼앗고 몇몇이 이익금을 독식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투쟁을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 그래서 빈부격차를 줄이고 복지국가가 되어 노동자들도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