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 유대의 하루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얇은 유리 판 위에 놓인 것처럼,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 위에 서 있었습니다. 권력은 먼 성곽 너머의 인물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세금 고지서와 징발 명령, 장터의 속임수와 토지 경매 소식이 마을 안방의 대화로 스며들어 가족의 저녁 밥상을 흔들었습니다. 땅 한 뙈기와 빵 한 조각을 지키려는 싸움은 종종 소리 없는 굴욕으로 끝났고, 빚의 사슬은 사람의 어깨를 밤낮으로 눌러 숨을 조였습니다.

종교는 공동체에 질서와 위안을 주었지만, 동시에 다른 종류의 쇠사슬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토라의 글귀 하나가 사람의 행동과 관계를 규정했고, 장로와 제사장의 말투는 공동체의 규범을 불문율로 굳혔습니다. 규범은 보호의 이름으로 작동했지만, 그것을 어기는 자가 받는 것은 신속한 배제와 수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입을 닫는 쪽을 택했고, 의문을 품는 일 자체가 위험이 되었습니다—질문을 품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었습니다.

바깥에서는 다른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헬레니즘의 풍속과 이방의 물건들이 광장에 스며들었고, 그 소음은 전통의 언어를 잠깐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것’은 일상의 돌파구가 되기보다 내부의 분열을 키웠습니다. 어떤 이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고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다른 이는 전통의 붕괴를 두려워하며 규범을 더욱 굳게 움켜쥐었습니다. 이질적인 충격은 연대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었고, 공동의 돌파구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 종교적 경직성이라는 삼중의 압력 속에서 사람들의 내면은 점차 무뎌졌습니다. 매일의 판단은 생존과 직결되었고, 그래서 큰 질문은 작아졌습니다. 혁명적 상상은 한때 감정의 불꽃으로 번지더라도 오래 지속 될 조직이나 신뢰를 얻지 못했습니다. 반란을 꿈꾸는 이는 군대의 무자비함을 알았고, 종교적 급진성은 공동체 내부의 분열과 보복을 낳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디는 법’만을 배웠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거대한 역사적 전환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숨을 다시 고르기 시작 했는지에 대한 증언입니다. 제도와 관습, 두려움과 굴욕이 가득한 풍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작은 질문 하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은 당장의 해법을 주지는 않았지만, 매일의 선택을 조금씩 달리하게 만들었고 결국 공동체의 결을 바꾸는 연쇄를 틔웠습니다.

여러분께 드릴 이야기는 바로 그 한 사람의 여정입니다. 외부의 목소리에 길들 여진 생활을 하나씩 거두어 내고, 스스로의 선택 앞에 서는 법을 배워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해방과 행복, 그리고 그로부터 피어나는 존엄의 빛을 이 책은 조용히 좇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거대한 이론이나 완결된 처방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일상적 결단 들이 모여 한 사람을 주인으로 세우는 과정을 관찰하려는 것입니다. 매일 무엇을 먹을지, 누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언제 침묵 할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그 작은 시간 들이 모여 몸과 마음의 다른 리듬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리듬이 곧 자유입니다.

자유는 곧 해방을 가져옵니다. 해방은 단지 남의 승인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따라 책임 있는 선택을 할 때 비로소 찾아오는 평온이 있습니다. 그 평온은 곧 행복의 첫 맥박입니다—크고 극적인 환희가 아니라, 매일의 작은 응답들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오래가는 기쁨입니다.

자율은 존엄을 낳습니다. 자신을 주인으로 세운 이는 비로소 자기 얼굴을 똑바로 보게 되고, 그 얼굴에서 타인의 얼굴을 존중할 여유를 얻습니다. 진정한 주인은 자기 중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인의 존엄을 알아보고 세워 주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선택을 지키는 힘은 타인을 억누르는 힘이 아니라, 타인을 일으켜 세우는 능력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내적 변화가 어떻게 공동체의 결을 바꾸는지 또한 살펴봅니다. 한 사람의 작은 해방이 다른 이의 숨을 넓게 하는 방식, 한 번의 정직한 계산이 장터의 신뢰를 되살리는 방식—그런 연쇄들이 곧 이 땅에 나타나는 ‘하늘나라’의 방식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하늘나라’가 먼 저편의 장소가 아니라, 주체로서의 자신 안에서 깨어나는 어떤 실재라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프롤로그의 이 말들을 읽으시는 동안, 부디 그 ‘갑갑함’의 냄새를 맡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먼 과거 한 시대의 고통이기도 하지만, 또한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도 되풀이되는 유형의 압박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 틈에서 시작된 작은 용기의 기록입니다—크지는 않지만 지속 되는 선택들이 어떻게 인간을 주인으로 세우고, 공동체의 숨결을 바꾸는지에 대한 관찰입니다.

1장 — 회당의 일상

회당의 아침은 늘 같은 일과로 몸을 깨웠습니다. 첫 빛이 낮게 창을 스칠 때면 돌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잠결의 얇은 막을 걷어냈습니다.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성급히 몸을 흔들거나 말로 떠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숨의 리듬이 맞추어졌습니다. 들이 쉬고 내쉴 때마다 오래된 목소리가 공간 위로 잔잔히 퍼졌습니다.

두루마리를 꺼내는 손은 신중했습니다. 가죽 묶음을 풀 때 나는 마찰음은 낮은 북소리처럼 되어 회당의 정적을 갈랐습니다. 장로가 한 줄을 읽으면, 읽은 문장은 소리로 증폭되어 남자의 손등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소년은 그 소리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는 듯이 들었습니다. 글자는 단지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집안의 틀, 밥상의 위치, 아이의 교육 방식, 흠잡힌 삶에 대한 사회적 온도까지 조율하는 일종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스승은 낭독의 맥을 잡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의 눈은 글자의 결을 읽는 데 익숙해졌고, 입술은 오래된 운율에 맞추어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가끔 그는 눈을 들어 사람들을 훑어보았는데 그 시선은 단호하면서도 슬쩍 부드러워졌습니다. 스승의 손끝이 가리키는 한 글자는 마치 땅에 박힌 말뚝처럼 그들의 일상을 고정 시켰습니다. “이 명절을 잊지 말 거라.” “이웃을 존중하라.” 말은 간결했지만, 그 말이 지닌 무게는 주머니 속 돌처럼 단단했습니다.

장로들의 표정은 다른 결 이었습니다. 그들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지 않았지만, 입술의 각도와 어깨의 긴장으로 이미 설교를 완성하고 있었습니다. 장로 대표가 한마디를 던지면 마을의 균형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누군가는 그 균형에 편승해 안도했고 누군가는 숨을 더 깊게 들이켰습니다. 이곳의 권위는 말보다 관습으로 움직였고, 관습은 다시 작은 몸짓들과 자리 배치로 재 생산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권위로 굳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한 번의 자리 배정, 한 번의 눈길, 한 번의 침묵으로 충분했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사람들은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길가의 빵 굽는 냄새가 회당 앞을 지나쳐 가고, 아이들의 발목에서 나는 먼지 소리가 멀어졌습니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불을 지피고 아버지는 이미 들판의 일거리를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말이 적었지만 그의 침묵은 분명했습니다. 말 대신 행동이 그의 권위였습니다. 하루의 규칙은 이미 그의 어깨에 솟아 있었고, 소년은 그 어깨를 종종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등은 규범의 지도와 같았습니다. 그 등 뒤에 서 있으면 얼굴을 올릴 틈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방식으로 규범을 전하셨습니다. 그녀의 말은 음식과 손길과 눈빛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오늘은 장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것은 경외 였고, 집안의 연대감을 확인하는 의례였습니다. 어머니는 그의 접시를 채우며 작게 웃으셨습니다. 손톱 밑의 밀가루 자국, 늘어진 앞치마의 주름 하나하나가 삶의 언어였습니다. 그녀의 말은 규범을 부드럽게 흡수 시키는 기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따뜻했고, 간간이 매운맛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식탁에서의 풍경은 평온해 보였지만, 그 평온은 얇았습니다. 작은 사건 하나가 언제든 균열을 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사건이 소년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친구 하나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음식을 훔치다 들킨 날, 공동체는 규범의 이름으로 그를 다그쳤습니다. 장로는 단어를 아끼지 않았고, 사람들은 장로의 말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친구는 단순히 용서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어린 나이의 수치와 절망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 표정은 소년의 가슴에 작은 못을 박았고, 그 못 끝에는 질문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소년은 밤마다 돌 담 아래로 가서 손끝으로 먼지를 긁었습니다. 돌 틈 사이로 들어간 작은 조각들과 빵 부스러기를 주워 올리면서 그는 작은 은밀한 의식을 하듯 자신만의 생각을 돌에 속삭였습니다. 규범은 사람을 살린다고 하지만, 규범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순간도 보았습니다. 왜 누군가의 배고픔은 책의 지침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가. 왜 누구는 규범을 들어 다른 이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아이의 순수한 물음은 그렇게 자라 질문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그의 비밀은 글이 아니라 매일 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글씨는 손끝이 아니라 숨결의 흔적처럼 그의 내면에 남아 있었습니다. “누가 자신으로 사는가”라는 문장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보물처럼, 밤의 고요 속에서 조용히 울렸습니다. 그 문장은 말로 만들어내기에는 아직 어린 울림이었고, 소년 자신도 그 뜻을 온전히 해석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 문장을 되뇌던 손떨림과 그 뒤에 남은 느낌은 분명했습니다—몸속에서 무언가가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회당의 일상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압력을 가했습니다. 누군가 실수하면 공동체의 눈은 번개처럼 그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규범을 어긴 자는 서서히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규범의 틀은 보호였지만, 동시에 견고한 틀이 되어 탈출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스템은 효율적이었습니다. 먹을 것을 나누고 평화를 유지하며 예측 가능한 생활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효율성 뒤에는 이름 없는 희생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소년은 그 희생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희생들이 돌 바닥에 눌린 작은 물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무늬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스승에게서 짧은 질문을 들었습니다. “네 마음에 어떤 것이 자라느냐?” 스승은 호기심과 경계가 섞인 눈빛으로 그를 보셨습니다. 소년은 대답 대신 뺨을 긁적였습니다.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승은 웃어 넘기려 하셨으나 그의 눈빛은 진지함을 붙들었습니다. “질문하는 자가 되거라.” 스승의 말은 온화했지만, 그 말의 울림은 외로웠습니다. 질문은 북소리처럼 굵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마찰이 필요했습니다.

그 밤, 방은 어두웠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와 몇몇 집의 대낮처럼 불 켜진 간이 등이 보였습니다. 소년은 침대에 누워 그날의 장면들을 떠올렸습니다. 장로의 낭독, 어머니의 손길, 친구의 움츠린 어깨. 머릿속의 이미지들은 모두 돌로 된 방 안에서 서로 부딪혔습니다. 그는 마음속 문장을 다시 더듬었습니다. 그 문장은 밤 빛에 검게 반짝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내면에서 여전히 선명했습니다. 손끝으로 눌러 쓴 검댕 자국을 더듬다가 그는 작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숨은 두렵지 않았고,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첫걸음을 떼기 전의 깊은 들숨 같았습니다.

소년의 눈은 천장을 헤매다 창문의 빛으로 향했습니다. 빛이 두루마리의 가장자리처럼 오려져 보였습니다. 그 빛을 통해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의 테두리를 처음으로 인지했습니다. 테두리 안에는 온갖 규범과 법이 자리했고, 그 법들이 만들어낸 질서는 분명 삶을 유지시키는 데 유효했습니다. 그러나 그 테두리 밖의 풍경도 존재했습니다. 바람, 먼지, 다른 언어의 울림, 그 풍경은 늘 어렴풋하게 밤마다 되뇌던 그 생각을 끌어냈습니다.

그는 곧 잠들지 못했습니다. 새벽녘에 다시 깨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누구의 삶을 사는가?” 그 말은 이전과 달리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어떤 결단의 전조처럼 그의 몸 안에 자리했습니다. 결단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질문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의 내부 세계는 분명 달라져 있었습니다. 돌 담 앞의 아이, 식탁의 접시, 회당의 가죽 두루마리, 모든 것이 그의 질문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직은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그의 발걸음을 밖으로 향하게 만들려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