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그가 사람에 대해 전제로 둔 관점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로 보았는가를 비교적 일관된 형태로 드러낸다. 당시 종교적·사회적 질서는 인간의 가치를 조건부로 취급했다. 누가 깨끗한가, 누가 부정한가, 누가 율법을 지켰는가, 누가 죄인인가와 같은 구분을 통해 어떤 사람은 받아들여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식의 질서가 작동했다. 그러나 예수가 주변화된 인물들, 즉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죄인으로 분류된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고 직접 접촉하며 관계를 맺은 사실은 그 반대 방향의 전제를 드러낸다. 즉, 인간의 존엄은 사회가 부여하거나 회수할 수 있는 자격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 안에 주어진 것으로 간주 된다는 점이다. 그에게 존엄은 성취나 규범 충족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속성으로 다뤄진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는 개인을 단순한 수동적 대상이나 지시의 수신자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원하느냐”, “네가 믿느냐”와 같이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 방식은 인간이 스스로를 진술할 수 있는 주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타인의 허가를 받아서만 비로소 책임과 선택 능력을 갖는 미완의 존재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자기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다뤄진다. 예수의 상호작용은 이 자율성을 외부 권위가 임시로 빌려주는 특권이 아니라, 인간 존재 내부에 원래부터 포함된 성질로 본다는 해석과 연결된다. 이런 해석 아래에서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표현으로 설명 가능하며, 이는 자기 의지와 자기 판단이 정당하다는 전제를 포함한다.

행복에 대한 이해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관찰된다. 예수는 사회적으로 ‘복이 없다’고 여겨진 집단에게 현재형으로 “복이 있다”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행복이나 복됨이 어떤 외부 조건, 예컨대 부나 지위나 도덕적 평판의 획득 이후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이미 현재 그 사람 안에서 가능한 상태로 간주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행복은 나중에 지급될 외부 보상이나 승인과 동일시되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발생 가능한 충만함, 즉 존재적 만족의 잠재력으로 다뤄진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전율하는 행복의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 된다.

예수의 발언에서 반복되는 “아버지의 나라”, 또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진술 역시 동일한 방향을 가진다. 많은 종교적 담론이 하느님의 나라를 미래의 어떤 시점이나 죽음 이후의 별도 영역에 배치하고, 그 접근 권한을 종교적 중개 구조가 관리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반면, 예수는 그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라는 식으로 기술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표현은 인간과 신적 근원(궁극적 의미, 최종적 정당성)의 관계가 외부 기관의 허가를 통해서만 열리는 외재적 구조가 아니라, 이미 인간 내부에 작동 중인 내재적 연결로 간주 된다는 점을 함축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처음부터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어떤 궁극적 승인·수용 안에 이미 포함된 존재로 이해된다.

이러한 전제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묘사가 가능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을 지닌다. 그 존엄은 사회적 심사나 규범적 판정의 결과물이 아니므로, 타인은 그 존엄을 박탈할 자격을 갖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율을 지닌다. 그 자율은 타인의 통제 아래에서만 의미를 갖는 파생적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주체성으로 내장되어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전율 가능한 행복의 잠재력을 지닌다. 이 행복은 외적 보상의 배달품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충만으로 이해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의 나라와 연결된 것으로 간주 된다. 이 연결은 외부 구조가 ‘통과 여부’를 판정해 승인하는 통행증의 형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상태로 간주 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도출되는 관계적 결과가 있다. 개인이 자신의 존엄을 본래 적이고 비조건 적인 것으로 인식할 경우, 동일한 논리를 타인에게도 적용하는 것이 요구된다. 만약 어떤 개인의 존엄이 선천적이라면, 그 구조는 특정 개인에게만 국한될 수 없다. 따라서 타인의 존엄 또한 조건 없이 동일하게 존재한다고 보는 태도가 뒤따른다. 이 태도는 타인을 ‘교정 대상’이나 ‘판단 대상’으로만 취급하지 않고,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이 인식의 형식은 전통적 언어에서 사랑으로 명명될 수 있다. 이 사랑은 감정적 동정이나 우월적 시혜라기보다, 타인을 자기와 같은 수준의 존엄을 가진 존재로 식별하고 그대로 인정하는 행위로 규정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주인으로 선 존엄이 다른 이의 존엄을 알아볼 때, 그 알아봄 자체가 사랑으로 기능한다.

이 모든 요소를 예수의 관점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기술적 진술이 가능하다. 예수는 인간을 결핍을 전제로 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존재로 전제했다. 그 “모든 것”에는 선천적 존엄, 자기 결정적 자율, 내재 된 행복의 잠재력,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와의 이미 주어진 연결이 포함된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내적 가치를 각 개인이 자신 안에서 인식해야 할 것으로만 제시하지 않고, 타인 안에서도 동일하게 식별되어야 할 것으로 다루었다. 그 결과 사랑은 ‘부족한 타인을 도와주는 행위’가 아니라 ‘같은 존엄을 확인하는 상호 인식’으로 정의된다.